최악의 황사가 몰아치던 2002년 5월14일.

한용외 삼성전자 생활가전 사업부 사장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기를 들자마자 "삼성은 반도체 사업으로 깨끗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 왜 제품 중에는 공기청정과 관련된 것은 없는 겁니까"라는 질책성 음성이 들려왔다. 이건희 회장이었다. 그는 "소비자들의 건강과 직결되는 사업에 기술과 노하우를 투입하세요. 이제는 환경 자체가 신수종 사업입니다"며 한 시간가량 지시를 내린 후 전화를 끊었다. 한 달 후 삼성전자에는 '공기 청정 태스크포스'가 만들어졌다. 삼성전자가 친환경 전자사업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한 삼성전자 40년 사사(社史)에 들어 있는 기록의 일부다. '도전과 창조의 유산'이란 제목이 붙은 이 사사에는 삼성전자를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킨 40개의 성공 스토리가 수록돼 있다. 2회에 걸쳐 주요 성공 사례를 게재한다.

◆컴퓨터 도사들 위해 면접 점수를 조작하다

"컴퓨터 천재들,특히 소프트웨어 인재를 뽑아 오세요. "

1991년 어느 날 삼성전자 컴퓨터사업부에 비상이 걸렸다. 러시아를 방문 중이던 이 회장이 느닷없이 국제전화로 인재를 데려오라고 지시한 것이다. 세계 1위인 반도체를 활용해 더 많은 부가가치를 내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인사팀은 '전국대학컴퓨터서클연합(유니코사)'이라는 7개 대학 학생들로 구성된 조직을 찾아냈다. 이들을 통해 전국의 소프트웨어 천재들을 모아 활동 공간을 마련해 주기로 했다.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멤버십'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1991년 5월5일 면접이 진행됐다. 자유분방한 소프트웨어 전문가들의 행색은 말 그대로 각양각색이었다. 면접 날짜를 잊고 자다가 불려나온 학생,운동복에 슬리퍼를 끌고 나온 학생도 있었다.

이렇게 멤버십 1기가 구성된 후 1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삼성은 또다시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이들 가운데 10명이 삼성 입사를 희망했다. 컴퓨터 천재들이었지만 학점은 '선동열의 방어율' 수준이었고,영어성적은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들은 학점이나 영어에 관심이 없었다.

삼성은 파격을 택했다. 학업 성적과 상관없이 면접에 응할 기회를 준 것이다. 그러나 면접 결과에 인사팀은 또다시 절망했다. 컴퓨터 실력과 면접 결과는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당시 한 직원은 인사팀에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는 계보가 있다. 실력이 뛰어나면 증조할아버지라 부르고 다음은 할아버지,아버지,아들,손자,증손자 이렇게 부르는데 면접 성적만을 따진다면 증조할아버지가 떨어지고 증손자가 합격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인사팀은 다시 회의를 소집했다. 결론은 면접 성적이 아닌 컴퓨터 실력대로 뽑자는 것이었다. 인사팀은 면접관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상황을 설명하고 면접 결과를 수정했다.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삼성전자가 면접 결과를 뒤집은 첫 번째 사례였다. 인재에 대한 삼성의 집착이 제도와 관행의 파괴로 이어진 셈이다.

◆"뚱뚱해진 고양이는 쥐를 못 잡는다"

2001년 8월 일본 도쿄 오쿠라호텔 인근 '자쿠로' 음식점에 삼성전자 수뇌부가 하나 둘 들어섰다. 이 회장,윤종용 부회장,이윤우 반도체총괄 사장,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황창규 메모리사업부장 등이었다. 이날 안건은 낸드플래시 시장 1위였던 T사의 합작제안을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2위인 삼성전자로선 원천 기술을 확보한 T사의 제안은 매력적이었다. 이 회장은 의견을 말해보라고 경영진에 주문했다. 경영진의 답은 이구동성이었다. "아직 부족하지만 혼자서도 1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회장의 생각과 같았다. '자쿠로 회동'의 결론은 독자노선이었다.

하지만 이 길은 험난했다. 낸드플래시 시장은 삼성이 양산에 들어간 직후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 회장은 반도체사업부를 찾은 어느 날 "눈앞의 기름진 음식만 즐긴 뚱뚱해진 고양이는 쥐를 잡지 못한다"며 신시장 개척을 주문했다. 마케팅팀은 대만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대만 PC업체들에 손가락만한 USB메모리를 팔아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삼성전자는 이듬해인 2002년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 1위에 올랐다.

3년 후 위기는 다시 찾아왔다. 2005년 낸드플래시 시장이 다시 공급과잉 위기에 빠져든 것.이번에 삼성이 찾은 묘수는 애플이었다. 애플은 당시 MP3 플레이어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삼성전자는 애플이 음악파일 저장용도로 쓰고 있던 '하드디스크' 대신 낸드플래시를 쓰도록 제안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애플을 찾아 "얇고 가벼운 제품을 만들려면 플래시 메모리를 사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세계 MP3플레이어 시장을 평정한 '아이팟 나노'가 탄생하는 계기가 된 순간이었다.

삼성전자는 이처럼 독자노선을 취하면서도 때로는 글로벌 업체들과의 협력을 통해 성장해 왔다. 2004년에는 극적으로 소니와 LCD(액정표시장치) 합작사인 S-LCD를 출범시킨 것은 성공적 제휴 사례로 꼽힌다.

김용준/김현예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