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겨울방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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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겨울방학이 시작됐다. 짧은 여름방학에 대한 긴 아쉬움 때문인지 딸들은 얼굴 가득 함박웃음이다.
어린 시절엔 방학을 참 학수고대했다. 지키지도 못할 방학시간표를 짠다고 친구들과 모여 하루를 보냈던 기억이 생생하다. 요즘 아이들은 방학 때도 온갖 학원에 시달리느라 뛰어놀 시간도 없지만 그 시절엔 눈 뜨면 친구들과 노는 것이 일이었다. 온갖 놀이에 정신이 팔리다보면 하루 해가 너무 짧았다. 오징어 구슬치기 땅따먹기 고무줄놀이에 딱지치기도 하면서 웃고 떠드느라 공부는 뒷전이었다.
놀이삼매경에 빠져 해 저무는 줄 모르고 있노라면 집집마다 엄마들이 아이들 찾으러 오는 소리가 동네 밖까지 다 들리곤 했다. 흙투성이로 집에 돌아와 먹는 저녁은 반찬이 없어도 얼마나 꿀맛이었는지 모른다. 일기쓰기 등 방학숙제는 뒷전으로 미뤄뒀다가 개학 이삼일 전에야 야단법석을 떨었다. 지금이야 인터넷을 검색하면 지나간 날씨도 금방 알 수 있지만 그때는 어렵사리 기억을 더듬거나 친구들 일기를 베껴 쓰는 일이 다반사였다. 부모님께 혼나면서도 방학숙제는 왜 그리 하기가 싫었는지.특히 긴 겨울방학을 믿고 어영부영 놀다보면 시간은 눈 깜짝할 새 흘러 개학이 코앞에 다가오곤 했다. 그래도 잘한 일은 초등학교 때 계속 썼던 일기장을 지금도 고이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딸들은 내 일기를 소설처럼 읽으면서 재미있어 한다.
기록의 소중함이다. 어릴 때부터 남 앞에서 당당하고 자신 있는 리더가 되길 바라셨던 아버지는 유치원 때부터 나에게 웅변을 가르치셨다. 웅변대회에 나갈 때마다 녹음하셔서 결혼할 때 그 테이프를 고이 싸주셨다. 30년도 더 지난 내 어릴 적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아버지의 사랑에 가슴 뭉클해진다. 아버지가 해주신 것처럼 나도 딸들이 그린 그림이나 지점토로 만든 어설픈 작품들도 잘 모아두고 있다.
나는 겨울방학 때면 시골 할아버지 집에서 며칠씩 지냈다. 할머니는 군불 때고 난 잔불에 고구마를 구워 주기도 하셨고 맛있게 삶아서 동치미와 함께 내주기도 하셨다. 할머니표 별미는 삶은 고구마를 썰어서 햇볕에 꾸덕꾸덕하게 말린 고구마 말랭이였다. 전라도 말로는 '고구마 빼깽이'라고 불렀는데 씹는 맛도 쫀득쫀득 일품이고 달착지근한 것이 영양만점 간식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60년 넘게 해로하셨고 같은 해에 석 달 간격으로 작고하셨다. 말 그대로 천생연분이셨다. 아이들 겨울방학 때면 따뜻했던 할머니 품이 더 그리워진다.
이번 방학 땐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들 실컷 하면서 놀게 해야겠다. 중3이 되는 큰 아이가 베이스 기타를 배우겠다고 한다. 커서 추억할 수 있는 겨울방학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응원해 줘야겠다. 잘 익은 김장김치 쓱쓱 썰어서 김치전도 해주고,들기름에 달달 볶아서 김치볶음밥도 해먹여야겠다. 아이들 방학을 빌려 나도 덤으로 마음의 여유를 찾는 듯하다.
김유정 < 민주당 국회의원 kyj207@assembly.go.kr >
어린 시절엔 방학을 참 학수고대했다. 지키지도 못할 방학시간표를 짠다고 친구들과 모여 하루를 보냈던 기억이 생생하다. 요즘 아이들은 방학 때도 온갖 학원에 시달리느라 뛰어놀 시간도 없지만 그 시절엔 눈 뜨면 친구들과 노는 것이 일이었다. 온갖 놀이에 정신이 팔리다보면 하루 해가 너무 짧았다. 오징어 구슬치기 땅따먹기 고무줄놀이에 딱지치기도 하면서 웃고 떠드느라 공부는 뒷전이었다.
놀이삼매경에 빠져 해 저무는 줄 모르고 있노라면 집집마다 엄마들이 아이들 찾으러 오는 소리가 동네 밖까지 다 들리곤 했다. 흙투성이로 집에 돌아와 먹는 저녁은 반찬이 없어도 얼마나 꿀맛이었는지 모른다. 일기쓰기 등 방학숙제는 뒷전으로 미뤄뒀다가 개학 이삼일 전에야 야단법석을 떨었다. 지금이야 인터넷을 검색하면 지나간 날씨도 금방 알 수 있지만 그때는 어렵사리 기억을 더듬거나 친구들 일기를 베껴 쓰는 일이 다반사였다. 부모님께 혼나면서도 방학숙제는 왜 그리 하기가 싫었는지.특히 긴 겨울방학을 믿고 어영부영 놀다보면 시간은 눈 깜짝할 새 흘러 개학이 코앞에 다가오곤 했다. 그래도 잘한 일은 초등학교 때 계속 썼던 일기장을 지금도 고이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딸들은 내 일기를 소설처럼 읽으면서 재미있어 한다.
기록의 소중함이다. 어릴 때부터 남 앞에서 당당하고 자신 있는 리더가 되길 바라셨던 아버지는 유치원 때부터 나에게 웅변을 가르치셨다. 웅변대회에 나갈 때마다 녹음하셔서 결혼할 때 그 테이프를 고이 싸주셨다. 30년도 더 지난 내 어릴 적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아버지의 사랑에 가슴 뭉클해진다. 아버지가 해주신 것처럼 나도 딸들이 그린 그림이나 지점토로 만든 어설픈 작품들도 잘 모아두고 있다.
나는 겨울방학 때면 시골 할아버지 집에서 며칠씩 지냈다. 할머니는 군불 때고 난 잔불에 고구마를 구워 주기도 하셨고 맛있게 삶아서 동치미와 함께 내주기도 하셨다. 할머니표 별미는 삶은 고구마를 썰어서 햇볕에 꾸덕꾸덕하게 말린 고구마 말랭이였다. 전라도 말로는 '고구마 빼깽이'라고 불렀는데 씹는 맛도 쫀득쫀득 일품이고 달착지근한 것이 영양만점 간식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60년 넘게 해로하셨고 같은 해에 석 달 간격으로 작고하셨다. 말 그대로 천생연분이셨다. 아이들 겨울방학 때면 따뜻했던 할머니 품이 더 그리워진다.
이번 방학 땐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들 실컷 하면서 놀게 해야겠다. 중3이 되는 큰 아이가 베이스 기타를 배우겠다고 한다. 커서 추억할 수 있는 겨울방학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응원해 줘야겠다. 잘 익은 김장김치 쓱쓱 썰어서 김치전도 해주고,들기름에 달달 볶아서 김치볶음밥도 해먹여야겠다. 아이들 방학을 빌려 나도 덤으로 마음의 여유를 찾는 듯하다.
김유정 < 민주당 국회의원 kyj207@assembly.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