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채권단(주주협의회)은 '현대그룹이 채권단의 중재안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예정대로 현대자동차그룹에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현대그룹이 채권단이 제시한 중재안에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반응한 데 대한 압박으로 풀이된다. 중재안은 현대건설을 예비협상대상자인 현대차그룹이 인수하더라도 현대건설이 갖고 있는 현대상선 지분(8.3%)은 시장이나 국민연금 등에 매각해 현대그룹의 경영권이 위협받지 않도록 하겠다는 내용이다.

채권단은 22일 실무진 회의를 열어 향후 매각 일정 등을 조율할 예정이다. 전체 주주협의회는 다음 주께 열린다.

◆"후속절차 예정대로 시작"

유재한 정책금융공사 사장은 21일 "현대그룹과 중재안에 대한 합의가 안 되더라도 후속절차는 시작해야 한다"며 "중재안은 현대그룹이 받아들여야 효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채권단은 중재안이 '현대그룹에 현대상선 경영권을 보장하고,현대차그룹은 현대건설을 인수하고,채권단은 5조1000억원이라는 매각 대금을 받을 수 있는 방안'으로 모두에게 이익이라고 보고 있다.

유 사장은 "채권단에는 매각주관사를 통해 현대그룹 및 현대차그룹과 접촉을 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뜻을 전달했다"며 "현대차그룹과도 협의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큰 무리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22일부터 채권단 실무자 회의

채권단 실무자들은 22일부터 현대차그룹에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부여하기 위한 일정 및 절차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현대차그룹에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주는 안건과 현대건설 매각을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 안건을 동시에 올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지만 일단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부여하는 안건만 올릴 가능성이 크다.

유 사장은 "한꺼번에 두 안건을 올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법률적 검토가 필요하기 때문에 일단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부여하는 안건만 올릴 것 같다"며 "전체 주주협의회는 다음 주께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유 사장은 "현대차그룹과 협상 시 현대상선 지분을 중립적인 제3자에게 매각하는 방안은 문서상으로 확실히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대그룹 "채권단 제안 말도 안 돼"

현대그룹 관계자는 "채권단의 중재안 자체가 현대건설이 현대차그룹에 인수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으로 절차상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채권단이 예비협상대상자에 불과한 현대차그룹과 현대건설 인수가 끝난 뒤의 문제를 논의하겠다는 것은 궤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대상선 지분 8.3%를 가진 주식 소유자가 현대건설인데 현대차그룹이 인수할 경우 주주도 아닌 채권단이 이를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는 문제"라며 "우리 측과의 MOU 해지가 과연 적법한 것인가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태훈/이호기/장창민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