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유엔의 중재 시도가 일단 실패로 돌아갔다. 이에 따라 북한의 무력도발을 규탄하는 한국 미국 일본 영국 등과 당사국 간 자제를 촉구하고 있는 중국 러시아 간 갈등도 더욱 깊어지는 양상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9일(현지시간) 긴급회의를 열고 한반도의 긴장 완화를 위한 성명서 채택 문제를 논의했지만 참가국 간 의견이 엇갈려 합의를 보지 못했다. 안보리는 20일 다시 회의를 열 예정이지만 진전된 논의가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중국의 반대 고수로 합의 결렬

이날 안보리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30분까지 8시간30분 동안 마라톤 회의를 했다. 그러나 성명서에 지난 11월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비난하는 내용을 반영해야 한다는 대다수 국가들의 요구에 중국이 끝까지 반대해 합의안 도출에 실패했다.

회의 초반 러시아는 회원국에 돌린 성명서 초안에서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언급하지 않은 채 "남북한이 최대한 자제하고 유엔이 긴장 완화를 위해 남북한에 특사를 파견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미국 영국 프랑스와 회의장 밖의 한국 일본 등은 러시아의 제안을 거절하고 영국이 내놓은 성명서 초안을 지지했다. 이 성명서에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규탄하고 현재 한반도 위기의 책임은 북한에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필립 파르함 영국대사는 회의에서 "한반도 위기의 모든 책임은 북한에 있으며 한국의 군사훈련에는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러시아와 중국이 반대했다. 이후 러시아는 영국의 초안에서 '북한'과 '연평도'를 뺀 '11월23일 포격을 규탄한다'는 수정안에 동의했지만 중국은 이마저 거부하면서 회의가 결렬됐다. 왕민 유엔주재 중국부대표는 회의에서 "중국은 한반도 정세가 매우 위급하다고 판단한다"며 "남북한은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는 어떠한 행위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고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빅토르 추르킨 유엔 주재 러시아대사는 "현 시점에서 사격훈련을 자제하는 것이 낫다"며 "한반도 사태가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데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대다수 서방 측 대표들은 "중국과 러시아가 이번 사태에 대해 북한을 적시해 비난하지 않기 위해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면서 남북한 양측에 훈련 자제만 요청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수전 라이스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회의가 끝난 후 "한반도 문제에 대해 안보리 회원국 간 견해 차이가 너무 커서 합의안을 도출할 수 없을 것 같다"며 "회의에서 다수 이사국이 북한의 천안함 침몰 및 연평도 포격을 강하게 규탄했다"고 말했다.

◆유엔,한반도에 특사 파견하나

안보리는 20일 회의를 다시 열어 성명서 채택 문제를 재론한다. 이에 대해 박인국 유엔 주재 한국대사는 "혹시 있을지 모를 (중국 등) 일부 국가의 입장 변화를 기다리기 위한 것으로 현재 상황으로 볼 때 큰 의미는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러시아가 제안한 유엔특사의 한반도 파견 문제가 재론될 것으로 보여 관심을 끌고 있다. 추르킨 유엔 주재 러시아대사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특사를 지명하는 방안은 논란거리가 아니었으며 안보리 이사국 다수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았다"면서 "이 문제는 각국 간에 더 토론해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AFP통신은 안보리 회의가 열리기 직전 한반도 상황을 브리핑한 린 파스코 정무담당 사무차장에게 관심이 쏠린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 2월 북한의 핵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유엔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파스코 사무차장은 이날 북한에 의한 연평도 공격은 한국전 이후 가장 큰 공격 행위 중 하나라는 점을 강조했고,지난 3월 북한의 천안함 공격에 대해서도 북한의 공격 행위라는 점을 명시했다.

유엔 관계자는 "반 총장은 모든 현안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고 강조해 반 총장의 역할에 무게를 실었다.

김태완 기자/유엔본부=이익원 특파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