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스푸트니크 순간'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는 보도다. 실제로 지난 6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어느 대학에서 'sputnik moment'란 표현을 썼다. 이 연설에서 그는 "스푸트니크는 미국을 잠에서 깨운 경종이었다. 그 뒤 우리는 힘을 모아 소련을 추월했을 뿐 아니라,새 기술과 산업,그리고 일자리를 창출했다"며 "미래 번영의 열쇠인 과학 연구와 교육 투자에 다시 집중하자"고 촉구했다. 사실 그의 말은 '스푸트니크 순간'보다는 '스푸트니크 국면'이 더 알맞은 번역이다.

오바마가 세상에 나오기도 전이지만,1957년 10월4일 소련의 스푸트니크 발사는 미국인들에게는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었다. 이미 미국과 소련 사이의 냉전은 급박해지고 있었다. 1949년 소련의 핵실험 성공은 그 시작이었다. 예상보다 훨씬 빨리 원자탄을 갖게 된 소련이 8년 뒤 미국에는 없는 인공위성까지 띄웠으니 언제 소련의 원자탄이 인공위성에 실려 미국 땅에 떨어질지도 모를 판이었다. 때마침 미국은 반공(反共)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소련에 원자탄의 비밀을 제공한 간첩이 처형당했고,매카시 열풍이 공산주의자들을 숙청했다. 한국에서 일어난 6 · 25전쟁이 미국에는 건곤일척(乾坤一擲)의 기회였을 것이다.

여하간 지금 오바마가 '스푸트니크 국면'을 다시 거론하는 것은 미국의 과학기술이 세계 수준에서 뒤지기 시작했음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반 세기 전 소련의 인공위성 발사에 놀라 미국이 과학기술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어 곧 소련을 앞지를 수 있었던 것처럼,미국이 지금 다시 맞은 비슷한 위기 국면을 과학기술의 발달로 극복하자는 메시지다.

미국의 위기의식은 지난주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09년 국제학업성취도(PISA 2009)' 보고서도 한몫을 거들었다. 중국 상하이의 학생들이 과학,수학,읽기에서 1등을 싹쓸이했다는 이 보고가 미국에는 1957년 스푸트니크의 충격으로 보인 것이다. 65개국의 15세 학생 비교에서 미국은 수학 32위,과학 23위,읽기 17위였다니 미국 지도자들이 기절초풍할 일이 아닌가. 이 보고에 따르면 상하이 다음으로는 한국 싱가포르 홍콩 핀란드 등이 비슷하고,그에 이어 일본 뉴질랜드 캐나다 등이 보인다. 우수한 나라의 점수는 600점에서 530점 사이에 퍼져 있다. 여기에 들지 못하는 미국이야 걱정스럽겠지만,한국은 지나치게 일희일비할 정도는 아니다.

이 대목에서 지난 7월3일자 이코노미스트지에서 읽은 각국의 지능지수(IQ) 비교가 생각난다. 조사대상 119개국 가운데 IQ 100을 넘은 나라는 겨우 13개국인데,한국인의 IQ는 106으로 싱가포르(108)에 이어 세계 2등이다. 다음은 중국과 일본이 105,이탈리아는 102,아이슬란드 몽골 스위스가 101이다. IQ 100에는 오스트리아 영국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노르웨이가 들어있고,독일(99) 미국(98) 프랑스(98)는 그 아래였다. 이 결과를 학자들은 건강상의 차이로 설명했다. 특히 전염성 질환이 국민의 지능지수를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IQ가 높다고 우쭐할 일만은 아니다.

국제학력비교 역시 사회경제적 여건이 크게 학력을 좌우할 것이어서 이런 단순비교가 그리 큰 의미를 갖지는 못할 성 싶다. 예를 들면 이번 조사에서 1등을 싹쓸이한 상하이의 경우 중국 학생들을 대표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중국의 대표적 성장지역 학생들만을 표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는 하지만,한국이 학생들의 과학기술 능력 향상에 소홀한 것은 사실이고,이는 두고 두고 우리의 심각한 문제가 될 것 같다. 특히 과학기술부를 없애고 그에 따라 행정기구 등을 바꿔놓은 것은 큰 실책이 아닐까 다시 생각하게 된다.

박성래 < 한국외대 명예교수·과학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