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상북도 일대를 휩쓸고 있는 구제역 발생으로 소가 10만 마리 이상 땅속에 묻히는 등 정부에서 확산방지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이 같은 사태를 보면서 우리는 새삼 인류의 생존과 번영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것은 전쟁이나 테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미생물과의 전쟁이라는 생각이 든다. 축산 농가들에 공포의 대상이 된 구제역은 1897년 독일의 미생물학자 프리드리히 뢰플러가 바이러스가 원인이라는 것을 발견한 이래 지금까지 지구 곳곳을 강타하고 있다. 그로 인한 사회적 경제적 손실이 막대하다. 우리나라는 1934년 처음으로 발생해 66년이나 지난 2000년부터 다시 나타났다.

구제역 외에도 사람이나 동물을 가리지 않고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전염병의 공격은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다. 특히 에너지의 낭비로 인해 더욱 심해지는 지구 온난화는 전염병의 원인이 되는 미생물의 창궐에 더 적합한 환경을 제공해준다. 생태계의 악화는 결과적으로 우리가 이미 충분히 치료할 수 있고 정복했다고 믿었던 전염병을 다시 유행하게 해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명의 인류를 희생시키고 있다.

최근 문제가 되는 구제역 외에도 환절기마다 새로운 돌연변이로 무장하고 찾아오는 겨울철 신종 인플루엔자나 조류독감(AI)들도 매우 위험하다. 이미 대전과 전북지역에서 발생사례가 보고돼 방역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신종플루는 노인이나 어린이 등 노약자들을 희생시키는 것은 물론 최근 돌연변이종은 젊은 사람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그로 인한 근로시간의 손실 등 경제적 피해가 막대하다. 문제는 대책이라고 해야 노약계층과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백신을 놔주고 개인들의 주의에만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라는 점이다. 이와 같이 매년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고 그에 관한 의학도 많이 발전했지만 전염병과의 싸움에서는 여전히 인류가 지고 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또한 전염병 확산이나 희생 정도는 각 국가의 위기관리 능력이나 사회의 기본 인프라가 얼마나 잘 갖춰져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정부가 매우 중요하게 관리해야 하는 척도이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고는 하지만 아직 전염병 대책에서는 미흡한 점이 많다. 이번 구제역의 경우만 보더라도 발생한 후에 소독제를 살포하거나 백신을 챙기는 모습을 보지만 이런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결국은 전염병이 충분한 개체수를 희생시킨 다음 병원균이 스스로 잠복기로 되돌아가기를 고대하는 것이 고작이다. 특히 각종 바이러스는 우리가 애써서 개발한 치료제나 백신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는 돌연변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어서 더욱 대책을 어렵게 하고 있다.

따라서 바이러스가 원인이 되는 전염병은 백신 주사나 치료제만으로는 대처할 수 없다. 전염병들의 원인이 되는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번식할 수 있는 조건이나 생태계의 악화를 막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또한 개개인의 위생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이를 실천하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근 일부 병원에서 발생해 전국으로 퍼질 조짐을 보이고 있는 슈퍼박테리아로 불리는 강력한 항생제 내성균들도 우리가 손을 잘 씻는 등 개인 위생습관을 철저히 지키고 의료진이 항생제 남용만 최소화해도 크게 걱정하지 않을 문제인 것이다. 구제역 같은 동물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에 시달리는 축산 농가들도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보다는 평소 충분한 사육공간 확보나 가축사육 환경 개선에 힘쓰는 예방활동이 백신보다 더 중요하다. 정부 역시 미리 취약계층을 위한 충분한 약제 비축이나 백신 확보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호 < 성균관대 의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