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 비자금 수사를 지휘하는 남기춘 서울서부지검장이 지난 8일 내부 통신망에 올린 글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현직 검사장이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은 전례가 드문 데다 수사 배경과 사건의 성격,언론 보도에 대한 소회까지 내비쳐 논란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남 지검장은 이번 사건의 성격을 '그룹 회장이 차명으로 보유한 부실 회사의 빚을 계열사 자금으로 갚은 배임'으로 규정했다. 차명주주로 돼 있는 부실 회사의 빚 3500억여원을 정식 계열사가 갚았기 때문에 배임이 성립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수사내용 이외에 한화 측이 수시로 언론에 자신들의 주장을 홍보하면서 '방어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지적도 했다. 남 지검장은 파장을 의식한 듯 "내부 직원들이 언론을 통해 수사 소식을 접하면서 검찰 수사를 오해할 소지가 있어 글을 썼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남 지검장의 글에 대한 법조계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차명계좌 5개로 시작해 3개월 동안 고생해 가며 수사했는데 '용두사미'라는 비판이 나오자 섭섭함을 느꼈을 테지만,기관장이 통신망에 감정을 표출한 것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한화그룹의 전 재무책임자인 홍동옥 여천NCC 사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법원에서 기각된 이후 글을 올렸다는 점에서 괜한 분풀이로 비쳐질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일각에선 "오죽 답답했으면 검사장이 직접 글을 올렸겠냐"며 이해가 간다는 의견도 있다.

통신망이 일으킨 가장 큰 파장은 수사 책임자가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 언론보도를 문제삼고,수사 내용과 성격을 공개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하는 점이다. 물론 내부 통신망이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공표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검사들이 내부 통신망에 올린 수사 관련 글들이 외부에 공개되는 사례가 종종 있었기 때문에 순전히 내부용으로만 볼 수는 없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청원경찰친목회 수사로 정치권이 반발하자 "검찰은 수사로 말해야 한다"며 의연한 대처를 주문했다. 이는 특정 사건이 아니라 모든 수사에 적용되는 원칙이다. 수사에 대한 평가가 안 좋다고 의연함을 잃으면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어렵지 않을까.

양준영 사회부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