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한다. 그런데 이러한 경제학의 기본 시각과 크게 어긋난 사태가 2007년의 세계 금융위기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땀흘려 모은 저축을 순식간에 날려 버렸다. 남의 돈을 날린 금융기관들은 파산으로 면책받았고,많은 사람들이 큰 피해를 입었지만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시장이 불량 금융상품을 여과없이 유통시켜 온 탓이다. 경제위기는 시장에 대한 세간의 믿음을 크게 뒤흔들어 놓았다.

일반 상품시장에서 상품을 구입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구입하는 상품이 무엇인지 알고 구입한다. 좋은 상품은 원가가 높지 않더라도 값이 비싼데 그 까닭은 상품이 좋은 것을 아는 소비자들이 서로 사겠다고 몰려들기 때문이다. 비싼데도 수요가 늘면 생산도 늘어난다. 시장은 소비자들의 선택을 통해 불량 상품을 걸러내고 좋은 상품만 유통되도록 하기 때문에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것이다.

그런데 금융시장은 좀 다르다. 일반사람들은 금융상품의 좋고 나쁨을 판별하지 못한다. 대부분 은행 등 금융기관에 돈을 맡기고 그들의 '전문가적' 투자에 편승한다. 금융기관 가운데 투자은행은 일반인들에게 금융상품의 '품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사업자다. 무디스(Moodys)나 S&P 같은 신용평가사도 같은 기능을 수행한다. 투자은행은 우수 회사로 분류한 기업의 회사채나 주식 발행을 주관함으로써 해당 증권의 품질을 보증 추천한다. 신용평가사들은 각종 증권에 대한 신용등급을 책정한다.

이들에게 법적 권위는 없지만 투자자들은 이들의 평판을 믿고 그 평가에 따라서 금융상품을 구입한다. 그러므로 금융시장이 투자자들의 선택을 통해 불량 금융상품을 걸러내려면 금융기관들이 그렇게 투자해야 하고,투자은행과 신용평가사들이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이들이 잘못할 때 금융시장은 결코 불량 금융상품을 걸러낼 수 없다.

'끼워팔기'는 비인기 상품까지 함께 구입하는 고객에게만 인기 상품을 판매하는 판매 방식이다. 소비자의 선택폭을 제한하는 만큼 불공정거래로 분류된 불법 행위다. 불량 채권과 우량 채권을 합성한 부채담보부채권(CDO) 판매도 그 본질은 '끼워팔기'와 다를 바 없다. CDO 같은 상품이 소비자의 선택을 제한하도록 허용하는 금융시장이 일반 상품시장처럼 잘 작동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상품 정보를 금융기관과 신용평가사에 크게 의존해야 하고 사실상 '끼워팔기'조차 허용해온 점에서 금융시장은 일반 상품시장과 여러모로 다르다. 금융시장이 잘 작동하려면 새로운 금융규제는 이러한 문제들을 잘 다스려야 한다.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