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국내에서 하던 대로 까맣게 물을 들이고 다녔죠.그런데 고객들 반응이 어딘지 모르게 껄끄러운 거예요. 직원들도 그렇고.이상하다 싶었지만 이유는 몰랐죠.바빠서 염색을 미루는 동안 머리카락이 하얗게 되고 나니 다들 정중해지는 거예요. 클레임도 줄어들고."

국내에서 은퇴한 뒤 일본의 한 골프장을 맡아 운영하는 지인의 얘기다. 그는 그때서야 일본에선 너무 젊게 보이면 곤란하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한국과 달리 60~70대가 대부분인 골프장 내방객들이 자신보다 한참 '어린'듯한 사장에 대해 불편한 느낌을 갖더란 것이다.

그래서 염색을 그만뒀더니 백발로 변했는데 여러모로 편리한 점이 많다는 고백이었다. 딸의 결혼식을 위해 귀국한 그의 머리카락이 온통 흰색으로 변한 걸 보고 깜짝 놀란 이들이 뒤늦게 타국에서 생활하느라 고생이 막심했던 모양이라고 위로했으나 내막은 그게 아니었던 셈이다.

일본은 여성의 평균수명이 86.44세(2009년,남성 79.9세)에 이르는 세계 최장수 국가다. 암 · 심장병 · 뇌졸중 등 3대 질병에 걸리지 않을 경우 평균수명은 여자 99.43세,남자 87.63세이고,만 100세 이상 인구만 4만명을 넘는다고 할 정도다.

어지간해선 노인 축에도 못든다는 말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찍부터 건강에 신경 쓰고 매사에 알뜰하다고 했다. 나이든 남성이 이른바 '깍두기 머리'를 선호하는 이유도 이발 같은 데 돈을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그런데도 노년 범죄가 늘어난다는 소식이다. 형법 위반자 중 노인 비율이 1988년 2.5%에서 2008년 13.3%로 급증하고,60대 이상 수감자도 2000년 9.3%에서 최근 16%로 증가했다는 것이다. 개중엔 일부러 죄를 짓는 사람도 있다는 마당이다.

감옥에 가면 노인용 기저귀도 주고 전문요양사도 대기하니 밖에서 떠돌거나 자식 눈치보는 것보다 낫다고 여긴다는 건데 이쯤 되면 장수는 축복일 수 없다. 미국에선 고령 수감자 증가가 관리비 폭증으로 이어진다는 분석도 나왔다.

남의 나라 일로만 치부하기 어려운 게 우리의 고령화 속도는 현재 세계 최고다. 노부모 부양 문제로 갈등을 겪는 가정도 수두룩하다. 건강과 경제적 여유가 수반되지 않는 장수는 짐일 뿐이다. 정부의 복지 혜택과 일자리 증대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노후를 준비하는 자세를 가다듬을 때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