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사이클이 항상 상승할 수는 없습니다. 국내 경제성장률도 올해 6% 수준에서 내년 4%대가 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입니다. "

이성태 전 한국은행 총재(현 한국은행 고문)가 내년 경제에 대해 '둔화' 쪽에 무게를 뒀다. 이 전 총재는 지난달 23일 신한금융투자가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주최한 '2011 리서치 포럼'에 연사로 참석,"경기 사이클이 하강 신호를 보내는 데다 물가가 최고치를 지난 것으로 보이는 만큼 내년 통화정책 당국자들의 고민이 커질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소비자물가에 대해서는 "최근 4.1%의 상승률을 기록했지만 일회성 요인도 있고 해서 금년 중 최고치를 지났거나 지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이 전 총재는 특히 "핵심 물가상승률(근원 인플레이션율)이 2%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기가 하강 신호를 보내고 물가가 현재 수준에서 하향 안정되는 국면이라면 통화당국자들의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완화 정책의 정상화 차원에서 한국은행이 내년에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상해야 하겠지만 경기 둔화와 물가 하향 안정 때문에 큰 폭의 인상은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으로 풀이된다.

이 전 총재는 "통화당국은 기준금리의 방향뿐만 아니라 수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며 "내년에 경기가 내려가고 물가상승률이 4.1%까지 갔다가 하향 안정된다면 당국자들의 선택이 뭘까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미국의 2차 양적완화(중앙은행이 경기부양을 위해 돈을 푸는 것)에 대해 "중앙은행이 본원통화를 밀어내는 것이 성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아직 검증된 바 없다"고 말했다. 이 전 총재는 "예전에는 금융이 발달하지 않아 본원통화 정책으로 금융을 움직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전파 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느려 바로 효과를 내기는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이 전 총재는 환율전쟁에 대해 "미국 중국 일본 유럽 등이 전면전으로 가지는 않겠지만 작은 마찰은 계속 생길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그는 국제통화 질서에 대해 "미국 달러의 힘이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달러를 대체할 수 있는 통화가 당장은 눈에 띄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계부채의 위험성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가계부채 문제가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우려라고 1년 전부터 얘기했는데,이는 당장 폭발한다는 뜻이 아니다"며 "만성적으로 한국 경제를 누르는 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짐을 갖고 있는 한 가계는 힘을 펼 수 없고,부채가 과도하면 금리 인상에 민감해지기 때문에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펴는 데도 어려움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