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 근거 여부 논란..`가벼운 입' 지적도

위키리크스의 미국 외교전문 공개 과정에서 우리 정부 고위 당국자들의 대북 인식의 일단이 고스란히 드러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일고 있다.

전문가들이 대표적으로 꼽는 내용 가운데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정부의 통일정책을 책임진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지난 7월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와 만난 자리에서 한국 전문가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15년을 넘기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한 대목이다.

현 장관은 "현재는 김 위원장이 체제를 확고하게 장악하고 있지만 2015년 이후까지 수명을 유지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 장관은 또 북한의 권력 세습 문제와 관련해서도 김정은으로의 권력 세습 과정은 "성급한" 것이라고 보고 이 과정에서 또 다른 "불장난"(fireworks)이 일어날 가능성을 예견했다.

이와 함께 지난 2월 천영우(외교안보수석) 당시 외교차관은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 대사와의 오찬에서 "북한은 이미 경제적으로 붕괴하고 있고, 김 위원장이 사망하면 2~3년 내에 정치적으로 붕괴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북정책에서 핵심 변수로 작용할 수 있는 김 위원장의 건강문제와 북한 체제에 대한 통일장관 등이 한 발언은 정부의 내부 기류를 반영하고 있다는 평가다.

한 소식통은 1일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이 어떤 인식을 토대로 전개되고 있는지 속내를 파악하는데 결정적인 발언"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치 1990년대 중반 이후 확산됐던 정부 내 `북한 조기붕괴론'을 다시 듣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북한의 현재 상황을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하던 90년대 중반보다 심각하게 보고 있고, 권력승계 과정에서 경제적 불확실성까지 겹쳐 있음을 인식하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북한의 조기붕괴를 희망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고위당국자들의 발언에서 구체적인 근거 제시가 부족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물론 동맹국인 미국 측 인사들과의 면담에서 평소 생각했던 얘기들을 '비공개'를 전제로 자유스럽게 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지만 '중요한 내용'을 너무 쉽게 언급한 것은 신중하지 못한 처신이라는 지적이 많다.

미국 당국의 정보보안 사항이 '느닷없이' 누출됐다는 정황을 참작하더라도 이런 미묘한 내용이 공개됨으로써 앞으로 한국 외교가 어려운 상황에 놓일 수 있는 '부메랑 효과'를 걱정하기도 한다.

'낙관전 기대'에 기울다보니 막연한 전망을 하는 오류도 지적되고 있다.

천 수석은 스티븐스 대사와의 만남에서 북한 붕괴 시 중국은 비무장지대(DMZ) 이북에 미군이 주둔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한미일과의 전략적·경제적 이해관계를 감안해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 것으로 전해졌다.

게다가 우리 정부의 6자회담 수석대표를 지낸 천 수석이 6자회담 의장직을 수행하는 중국 측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사무특별대표에 대해 '가장 무능하고 오만한 관리, 북한과 비핵화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홍위병 출신'이라는 원색적 발언까지 했음이 드러나면서 '가벼운 입'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한 외교소식통은 "국민의 안위를 책임진 외교안보 고위당국자들은 희망사항과 사실 관계를 혼동하지 않고 과학적이고 확실한 근거를 바탕으로 정책을 구사해야 한다"면서 "차제에 고위공직자들의 근무기강을 점검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이귀원 기자 lkw77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