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회의 이후 위안화] 1930년대초 파운드 대체한 달러, 브레턴우즈 체제로 위상 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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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워치
기축통화의 역사
기축통화의 역사
위안화의 부상은 저물고 있는 달러 패권 시대(팍스달러리움)를 보여준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저서 '위기의 경제학'에서 "중국의 빠른 부상으로 (기축통화로서) 달러에 남은 시간이 몇 년뿐이라는 전망도 나온다"며 "막대한 경상흑자와 세계 최대 수출국,상대적으로 적은 예산적자와 해외 채무 등 달러가 기축통화가 될 때 미국의 모습과 지금의 중국이 닮았다"고 진단했다. 그는 "갑작스러운 달러의 몰락은 수백년 된 은행 금고를 열었더니 그동안 모아둔 금화가 먼지로 변한 것 못지않은 충격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달러가 기축통화 지위를 위협받듯이 이미 한 시대를 풍미하고 사라진 국제통화도 적지 않다. 유럽에선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서 발행된 그리스 은화인 드라크마가 최초의 국제통화로 알려졌다. 로마제국이 들어서며 로마 금화인 아우레우스와 은화인 데나리우스에 그 자리를 내줬다. 이후 4세기 비잔틴제국의 콘스탄티누스 대제 시대에 중세의 달러로 불리는 금화 솔리두스가 도입돼 10세기까지 사용됐다. 13세기 접어들어 국제교역 중심이 이탈리아로 이동하자 제네바의 금화 제노인과 피렌체의 금화 플로린이 국제통화 지위를 얻었다. 17세기 네덜란드가 국제무역의 중심에 서자 길더가 널리 사용됐고 18세기 말 영국이 부상하면서 파운드화가 기축통화 자리를 차지했다.
영국은 1차 세계대전 직후 경제와 무역 규모에서 미국에 1위를 넘겨줬지만 1928년 후반까지도 세계 주요국 보유외환에서 차지하는 파운드화 비중은 달러화의 2배가 넘었다. 영국이 금본위제를 포기한 1931년에야 비로소 달러가 파운드화를 대신하게 됐고 2차 세계대전 직후 달러와 금을 고정환율로 연계한 브레턴우즈 체제는 달러 위상을 공고히 했다. 미국이 1971년 금본위제를 포기했지만 기축통화 위상은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크게 늘어난 미국의 경상적자 및 재정적자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등으로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도전받고 있다.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차지하는 달러 비중은 1991년 71.0%에서 지난해 62.2%로 줄었다. 유로화는 비중이 같은 기간 17.9%에서 27.4%로 늘었지만 유럽 재정위기 우려가 가시지 않으면서 유로화 붕괴론이 또다시 흘러나온다. 엔화 비중은 6.4%에서 2.9%로 줄어 기축통화 후보군에서 멀어지고 있다. 위안화가 기축통화의 강력한 후보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적지 않은 세월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회고록 '격동의 세월'에서 "이라크가 석유 결제 통화를 달러에서 유로로 바꾼 것이 미국의 이라크 전쟁 이유 중 하나였다"고 술회할 만큼 미국은 팍스달러리움 유지에 적극적이다.
중국 내부에서도 "위안화 기축통화는 시장수급에 따르는 환율결정 메커니즘 구축,(자본시장 개방 등) 국내 금융시장 발달이라는 조건이 충족돼야 하기 때문에 최소 20년은 더 필요하다"(장빈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
달러가 기축통화 지위를 위협받듯이 이미 한 시대를 풍미하고 사라진 국제통화도 적지 않다. 유럽에선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서 발행된 그리스 은화인 드라크마가 최초의 국제통화로 알려졌다. 로마제국이 들어서며 로마 금화인 아우레우스와 은화인 데나리우스에 그 자리를 내줬다. 이후 4세기 비잔틴제국의 콘스탄티누스 대제 시대에 중세의 달러로 불리는 금화 솔리두스가 도입돼 10세기까지 사용됐다. 13세기 접어들어 국제교역 중심이 이탈리아로 이동하자 제네바의 금화 제노인과 피렌체의 금화 플로린이 국제통화 지위를 얻었다. 17세기 네덜란드가 국제무역의 중심에 서자 길더가 널리 사용됐고 18세기 말 영국이 부상하면서 파운드화가 기축통화 자리를 차지했다.
영국은 1차 세계대전 직후 경제와 무역 규모에서 미국에 1위를 넘겨줬지만 1928년 후반까지도 세계 주요국 보유외환에서 차지하는 파운드화 비중은 달러화의 2배가 넘었다. 영국이 금본위제를 포기한 1931년에야 비로소 달러가 파운드화를 대신하게 됐고 2차 세계대전 직후 달러와 금을 고정환율로 연계한 브레턴우즈 체제는 달러 위상을 공고히 했다. 미국이 1971년 금본위제를 포기했지만 기축통화 위상은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크게 늘어난 미국의 경상적자 및 재정적자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등으로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도전받고 있다.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차지하는 달러 비중은 1991년 71.0%에서 지난해 62.2%로 줄었다. 유로화는 비중이 같은 기간 17.9%에서 27.4%로 늘었지만 유럽 재정위기 우려가 가시지 않으면서 유로화 붕괴론이 또다시 흘러나온다. 엔화 비중은 6.4%에서 2.9%로 줄어 기축통화 후보군에서 멀어지고 있다. 위안화가 기축통화의 강력한 후보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적지 않은 세월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회고록 '격동의 세월'에서 "이라크가 석유 결제 통화를 달러에서 유로로 바꾼 것이 미국의 이라크 전쟁 이유 중 하나였다"고 술회할 만큼 미국은 팍스달러리움 유지에 적극적이다.
중국 내부에서도 "위안화 기축통화는 시장수급에 따르는 환율결정 메커니즘 구축,(자본시장 개방 등) 국내 금융시장 발달이라는 조건이 충족돼야 하기 때문에 최소 20년은 더 필요하다"(장빈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