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역 뉴욕제과 뒤편 먹자골목.25일 걸어서 10분 동안 둘러본 이 골목에는 훼미리마트 GS25 세븐일레븐 바이더웨이 미니스톱 등 편의점 점포가 10여개나 들어서 있었다. '간판'은 서로 다르지만,점포 안을 채운 '내용물'에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가격도 마찬가지다. GS25 점포 판매대에 놓인 새우깡 가격은 800원.신라면과 레쓰비 캔커피에는 각각 730원과 700원의 가격표가 붙어있었다. 인근 훼미리마트 세븐일레븐 미니스톱 등에서 판매되는 제품 가격도 똑같았다.

◆급증하는 점포 수…차별화만이 살 길

상품이나 가격 측면에서 별다른 차별성이 없었던 만큼 소비자들은 '편의점 간판이 무엇이냐'에 관계없이 그저 가장 가까운 점포에 들러 필요한 물건을 사곤 했다. '편의점 경쟁력은 얼마나 목 좋은 곳을 잡느냐에 달려 있다'는 얘기는 이래서 나왔다. 세븐일레븐과 올해 초 롯데에서 인수한 바이더웨이가 내달 초 가격인하에 들어가면 지난 20여년간 편의점 업계에서 지켜져 온 '일물일가(一物一價)' 원칙이 깨지면서 '점포 위치'가 전부였던 편의점 경쟁력의 척도에 '저렴한 가격'이 추가될 전망이다.

롯데 계열 편의점인 세븐일레븐 · 바이더웨이가 가격인하에 나선 것은 편의점 업계를 둘러싼 환경이 바뀌고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2000년 훼미리마트 GS25 세븐일레븐 바이더웨이 미니스톱 등 주요 편의점 업체의 점포 수는 모두 2413개.10년이 지난 올 10월 말 기준 점포 수는 1만5769개로 6.5배 늘었다. 올 들어 새로 생긴 것만 2282곳에 달한다.

동일 상권에 수많은 편의점이 들어선 만큼 소비자를 바로 옆 경쟁 점포가 아닌 자사 점포로 끌어들일 수 있는 '차별화된 무기'가 필요해진 것이다. 세븐일레븐 · 바이더웨이는 이런 차별화를 '가격'에서 찾았다. 세븐일레븐 관계자는 "마진폭은 줄어들겠지만 대신 해당 제품의 매출이 20~30% 늘어나고 연관제품의 판매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수익성에 큰 타격은 없을 것"이라며 "소비자의 머릿속에 '세븐일레븐이 싸게 판다'는 인식이 심어지면 향후 매출은 더욱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세븐일레븐도 맥주 등 주요 제품을 대형마트 수준으로 파격 할인해 주는 방식으로 고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맥주는 세븐일레븐이 싸다'고 알려지면서 고객이 늘어난 것은 물론 안주 등 연관상품 매출도 확대됐다.

'편의점 고객은 가격에 민감하지 않다'는 업계의 통설이 바뀌고 있는 점도 세븐일레븐이 가격인하에 나선 배경으로 꼽힌다. 회사 관계자는 "최근 이동통신사 제휴 할인이 되는 편의점만 찾아다니는 고객이 크게 늘고 있다"며 "12~15% 싸게 살 수 있다는 점에 많은 소비자들이 매력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격인하 따른 매출증대 효과가 관건

경쟁업체들은 일단 세븐일레븐이 추진하는 가격인하 효과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섣불리 가격을 내렸다가 기대했던 매출은 오르지 않고,수익성만 나빠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GS25 관계자는 "10여년 전 일부 시범점포를 대상으로 가격을 내렸지만 매출증대 효과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모든 점포로 확대하는 계획을 포기했었다"며 "편의점 고객 중에는 꼭 필요한 상품 한두 개만 구입하는 '목적구매형'이 많기 때문에 가격인하에 따른 매출증대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훼미리마트 관계자는 "섣불리 가격을 내리면 본사뿐 아니라 가맹점주의 수익성도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편의점은 비싸다'는 인식이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자리잡힌 상황에서 '세븐일레븐 발(發) 가격인하'가 기대 이상의 호응을 얻을 경우 경쟁업체들이 기존 가격을 고수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치열한 경쟁구도를 감안하면 훼미리마트나 GS25도 가격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며 "대형마트처럼 편의점에서도 사실상 가격 경쟁이 시작된 셈"이라고 말했다.

이정희 중앙대 교수(산업경제학)는 "오피스 상권에 주로 들어가던 편의점이 주택가로 침투하면서 상대적으로 가격 경쟁력이 높은 동네슈퍼를 새로운 경쟁 상대로 맞아들이고 있다"며 "동네 슈퍼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편의점들이 기존의 '고가 정책'을 변경할 가능성은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오상헌/강유현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