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회계 및 경영자문법인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의 조영(한국명 조형택) 파트너(53)는 28년 동안 뉴욕에서 감사 및 각종 자문업무를 해온 베테랑 회계사다. 국민은행과 합병한 주택은행,신한은행 등이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하는 과정에서 포괄적인 자문을 제공했다. 한국 기업이 미국에 진출하는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유다.

1998년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는 서울은행 제일은행 등 한국 금융회사들의 해외매각 실사를 맡았고,정책 당국자들에게 외국 투자가들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는 금융구조조정 방안 등을 조언하기도 했다. 최근 PwC의 파트너에서 물러난 뒤 투자회사(앤트롭제이인베스트먼트)를 설립한 그를 만나 한국 기업의 효율적인 미국 시장 진출 방안을 들어봤다.

▼한국 금융회사의 미국 진출 중요성을 많이 강조해왔는데.

"금융위기를 겪으며 미국 내에서 선진금융기법,파생상품 등을 많이 다룬 대형 금융회사들이 비틀거리고 있는 만큼 이런 판도변화를 잘 이용해 진출을 적극 고려해야 합니다. 미국은 모든 분야에서 경쟁이 치열합니다. 미국에서 이기면 기업이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습니다. 금융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내 금융사들이 비록 국내에서 수익을 많이 내도 월가 금융사와 떳떳하게 경쟁할 수 없으면 지속적인 성장이 불가능하죠.상징적인 의미가 큰 시장이고,그래서 포기하지 말고 반드시 공략해야 한다고 봅니다. "

▼짧은 시일 내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방편으로 인수 · 합병(M&A)이 많이 거론됩니다. 하지만 한국 기업은 물론 일본 기업들도 미국 내 M&A 과정에서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M&A에서 중요한 성공요소의 하나가 타이밍입니다. M&A를 적극 검토해볼 때입니다. 재협상 논란을 빚고 있지만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내년 중 양국 국회 인준을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또 세계적으로 유동성이 풍부합니다. 유동성이 풍부하면서도 기업 가치는 아직 저평가된 상태입니다. 물론 돈만 있다고 M&A가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조건이 좋아도 인수자 능력이 부족하면 실패로 끝나죠.그동안 한국 기업들이 미국 M&A로 고전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인적자원 확보 등 충분한 준비를 거쳐 미국 시장 진출을 타진해야 합니다. 기술과 시장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 사업을 검토해야 합니다. "

▼M&A를 추진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기업은 수직과 수평 라인을 확대하려는 취지로 M&A를 추진하죠.인수 타당성을 검토할 때 매출 및 제품 기술은 쉽게 파악할 수 있지만,인적자원과 기업 문화 등 관리체제는 그렇지 못해요. 예를 들어 M&A 후 인력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데,얼마나 보상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계약이 있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합니다. 필요할 경우 법인이 아닌 자산만 사들이는 방안도 검토해볼 수 있습니다. 미국 기업을 인수한 뒤에는 가능하면 본사 직원을 내보내지 말고 미국 사정에 밝은 미국 전문가를 활용해야 합니다. 그래야 핵심 인재 유출을 막을 수 있습니다. "

▼인수 자체보다 인수 후 합병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이죠.

"인수 후 효율적인 회사 운영이 더 중요합니다.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 회사 종업원들에게 희망을 심어줘야 합니다. 또 미국 기업 문화를 이해해야 합니다. 미국 기업은 직속 상사의 권한(superviser's authority)이 막강합니다. 직속 상사에게 마땅한 권한을 주면 조직을 튼튼하게 이끌어갈 수 있습니다. 본사의 결정을 밀어붙이는 방식으로는 핵심 인재 유출을 막을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

▼미국에서 본 한국 기업의 경쟁력은 뭐라고 할 수 있나요.

"제품 생산력과 스피드입니다. 효율적인 생산체제 덕분에 원가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경영 측면에서 보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열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 기업의 속도도 거기서 나오는 것이죠.서구 사람들은 통상 0.1%까지 문제가 될 것을 확인하려고 하지만,한국은 80~90%가 되면 일단 시장에 내놓고 부족한 게 있으면 보충하려고 합니다. 제품 출시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겠다는 것이죠.1%의 오류를 잡아내기 위해 6개월 상품 출시를 늦추면 오히려 경쟁에서 도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경영행태는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

▼한국 기업의 취약점도 느끼셨을 텐데요.

"전반적인 관리 능력이 떨어집니다. 급하게 성장한 탓에 짜임새 있는 관리체제를 구축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을 겁니다. 미국 일류 기업들은 이미 10년 전에 글로벌 관리 체제를 탄탄하게 마련했습니다. 핵심 역량이 아니면 외부에서 조달하기 때문에 글로벌 조달 능력도 한국보다 앞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단적인 예가 금융산업입니다. 금융산업은 관리가 전부라고 할 수 있죠.한국이 제조업에 비해 금융산업이 뒤처진 이유는 관리 측면에서 약하기 때문입니다. "

▼월가의 일부 투자자들은 한국 대기업의 지배구조에 대해 불만이 있는데요.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지배구조 문제는 주관적 판단에 맡겨야 합니다. 리더십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다면 오너십은 기업 경쟁력의 한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그걸 두고 나쁘다거나 좋다고 말할 수 없죠.잦은 전문경영인 교체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결국 성과로 판단해야 합니다. "

▼선진국과 비교해 한국 회계 수준을 평가한다면.

"내년부터 한국도 국제회계기준(IFRS)을 도입하는 만큼 선진국 수준의 회계 기준을 적용하게 됩니다. 영업권 상각 방식에서 차이가 많아 미국 진출 기업들이 당황했던 적이 있었지만,앞으로는 그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겁니다. 무엇보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국내 기업들의 투명성이 강화됐습니다. 부채 비율 측면에서 국내 기업의 건전성은 미국 기업 못지않습니다. 또 (부실 등의) 문제가 생기면 이를 숨기려고 하지 않고 적극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죠."

▼한국 경제인들을 만나면 어떤 조언을 해줍니까.

"뉴욕에서는 실물과 금융 분야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이번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고위 인사들에게 "한국은 괜찮다"는 얘기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차별화 포인트를 해외 투자가들에게 심어줘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한국 경제는 기초가 튼튼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경기 회복이 빠를 것이라는 점을 믿게 해야 한다고 권했습니다. "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


■ 조형택 파트너는

경기고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워싱턴주립대에서 회계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86년 PwC 뉴욕 본사에 회계사로 입사,1996년 파트너로 선임됐다. 현재 한국회계학회 부회장과 동화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한국 금융회사들의 미국 시장 진출을 자문해주고,한국에 진출하는 미국 기업을 위한 경영 자문활동도 하고 있다. 대기업 및 고위 공무원들의 글로벌 경영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개발,강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