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에 있는 뉴로바이오시스는 최근 '인공 달팽이관(인공 와우)'을 개발했다. 귀를 대신할 수 있는 장치다. 10년 동안 끈질긴 도전 끝에 세계 네 번째로 이뤄낸 것이다. 전기 전자 센서 생체공학 등이 결합된 이 제품이 국산화됨으로써 국내외 청각장애인에게 좀더 저렴한 비용으로 소리를 듣게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경기도 화성에 있는 사파이어테크놀로지는 최근 1년 새 종업원을 50여명에서 150여명으로 3배가량 늘렸다. 공장도 새로 지었다. 밀려드는 주문을 감당할 수 없어서다. 이 회사가 만드는 제품은 사파이어 덩어리로 LED(발광다이오드)제조에 필수적인 소재다. 특히 이 회사의 제품은 수율이 높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시화공단의 다원시스는 실험용 핵융합연구장치에 전원장치를 공급하며 관련업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기술력으로 승부한다는 점이다. 초창기 어려움을 극복하고 벤처캐피털의 지원을 받아 성장했다는 점도 비슷하다. 대부분 10~15년 정도의 업력을 지녔다는 유사점도 있다.

최근 들어 벤처붐이 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벤처기업은 2만개를 돌파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올해 신설법인은 8년 만에 6만개를 돌파할 것으로 중소기업청은 보고 있다. 벤처캐피털의 연간 투자조합 결성액도 벤처붐이 한창이던 2000년의 1조4341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술력이 있는 벤처들이 쑥쑥 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벤처기업은 사업을 하면서 몇 번의 고비를 맞게 된다. 창업 초기 때도 힘들다. 하지만 더욱 어려운 시기는 기술개발을 마치고 생산과 마케팅이 본격화되는 시기다. 이른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으로 불리는 기간이다. 기업이나 업종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개 창업한 지 3~7년 사이가 이에 해당된다.

창업초기엔 그런대로 종잣돈으로 기업을 경영하고 지인들로부터 자금을 융통해 넘기기도 하지만 본격적인 기술개발과 생산,그리고 마케팅에 돌입하게 되면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이 든다. 그런 과정에서 도산하는 기업이 부지기수다.

문제는 이 기간 중 투자를 받기가 가장 힘들다는 점이다. 위에서 언급한 업체들은 예외지만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대부분의 기업들은 심한 자금난을 겪게 된다. 벤처캐피털이나 보증기관에선 이들 기업에 대한 과감한 지원을 꺼린다. 이 시기엔 엔젤도 찾아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미국처럼 기업 인수 · 합병(M&A)이나 기술거래가 활성화돼 있지도 않아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부딪친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결국 첨단 기술이 사장되고 기업인들은 재기하기 힘든 상황을 맞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벤처캐피털과 보증기관 정책금융당국의 과감한 투자와 보증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들만 닦달할 수는 없다. 특히 남의 돈을 끌어다 조합을 만들어 운영하는 벤처캐피털은 남는 게 있어야 투자하기 때문이다. 결국 '죽음의 계곡' 문제 해결의 포인트는 M&A와 기술거래 활성화로 귀결된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은 투자자금의 70% 이상을 M&A와 기술거래를 통해 회수한다. 한국 같이 바늘구멍처럼 좁은 기업공개(IPO)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상장기업을 무작정 늘릴 수도 없다. 엉성한 기업의 상장은 투자자들의 피해를 키우기 때문이다.

결국 M&A와 기술거래를 활성화시키지 않으면 기술벤처강국의 꿈은 쉽게 이룰 수 없을 것이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