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우리님과 한평생 서로를 아끼며 남부럽잖게 살고파/ 창밖으로 도도하게 달빛이 흐르는 우리 궁전에서/ 와인 한 잔과 님의 입술에 취해 살고파/ 포근한 안식과 … 세상을 잊은 망각의 시간들을 기다리며.'<이승환 '이상과 현실'>

TV드라마 '역전의 여왕'은 이런 꿈과 현실의 괴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남편의 실직 탓에 결혼하면서 그만뒀던 회사에 계약직으로 들어간 주인공은 옛 후배들의 노골적인 비아냥에 시달린다. 뿐이랴.같은 일을 해도 남편은 야근하고 그는 시댁 제사 설거지를 도맡는다.

이상과 현실은 이렇게 다르다. 교육은 더하다. 0교시에 야간자율학습까지 하고도 모자라 밤 9~10시에 학원으로 향하는 아이가 안쓰럽지 않은 부모는 없다. '우리 아이들 숨 좀 쉬고 살게 해주자'는 말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학부모 또한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얼마나 많이 풀어 봤느냐에 따라 나오는 수능시험 몇 점 차이로 합격 가능 대학이 바뀌는 게 현실이다. 사정이 이런데 아이들을 입시 굴레에서 풀어주자며 야자를 반대하고 칼퇴근하는 일부 교사들의 태도는 사교육비가 없어 애태우는 부모 마음에 대못을 박는다.
체벌도 마찬가지다. 학생을 인격적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원칙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수업시간에 늦거나 졸았다는 이유로 뺨을 후려갈기는 교사,실력과 인품 대신 매질로 아이들을 다스리려 드는 교사가 사라져야 하는 것도 물론이다. 그러나 교실은 단순하지 않다. 학생답지 않은 차림으로 등교하거나 수업 중 발을 구르고 옆사람을 괴롭히는 문제 학생을 통제하지 못하면 수업 분위기가 흐트러지고 그 피해는 다른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체벌을 가하지 않고 문제를 바로잡을 수만 있다면 그보다 좋을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시 교육청이 내놓은'체벌 대체 매뉴얼'을 보면 과연 이런 방식이 통할까 의문스러운 걸 어쩌기 어렵다. 상습 지각생에게 시간계획표를 짜게 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교복치마를 짧게 만든 경우 재활용 교복을 제공한다는 대목에 이르면 헛웃음마저 나온다. 이상과 현실,이론과 현장의 차이를 감안하지 않은 정책은 부작용과 혼란을 부르게 마련이다. 급하다고 실효성도 없는 대책을 내놓기보다 지금이라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해야 마땅하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