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션만기일인 11일 오후 2시30분.서울 여의도 증권가에는 "외국인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소문이 돌았다. 장중 한때 1976.46까지 오르며 연중최고치를 경신할 듯했던 코스피지수가 밀리기 시작했다. 장마감 동시호가 시간인 오후2시50분.도이치증권 서울지점 창구를 중심으로 1조6200억여원에 달하는 외국인의 프로그램 매물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코스피지수는 순식간에 50포인트 급락하며 1914.73으로 주저앉았고 시장은 패닉상태에 빠졌다.

외국인이 그간 선물을 팔고 현물을 사두면서 쌓아뒀던 매수차익거래 잔액을 옵션만기를 맞아 대량 청산한 것이 시장에 큰 쇼크를 줬다. G20 정상회의가 끝나고 오는 16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조정하면 국내 금융시장이 크게 출렁거릴 것이란 우려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선물과 연계된 대량 매도는 일회성 이벤트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하면서도 시장의 충격이 가라앉으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이치증권발 프로그램 매물 쇼크

이날 현 · 선물과 연계된 외국인의 차익 순매도 규모는 1조3390억원이다. 프로그램과 차익거래 순매도 모두 사상 최대치였다. 외국인의 하루 순매도 금액도 1조3099억원으로 역대 최대치(2010년 5월7일 1조2459억원)를 경신했다. 이중호 동양종금증권 연구위원은 "원 · 달러환율 1200원대에서 들어온 외국인 차익거래 매수잔액 규모가 2조5000억원 정도였다"며 "이 자금 중 상당 부분이 이날 정리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김재범 JP모건증권 서울지점 주식영업본부장은 "옵션만기일을 맞아 특정 인덱스펀드에서 포지션을 청산하면서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바스켓으로 내다 판 것"으로 풀이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날 합성선물을 이용해 대규모 매도에 나선 세력은 미국 뉴욕 소재 헤지펀드인 르네상스 테크놀로지"라고 지목하기도 했다.

최창규 우리투자증권 연구원도"연말 배당수익률이 기대에 못 미칠 것이라고 판단한 외국인이 운용하던 포지션을 정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금리반등 · 환율안정에 차익실현

외국인은 지난 6월 이후 3조원 이상의 매수차익잔고를 쌓으면서 원화강세와 현 · 선물 간 가격차로 상당한 수익을 올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심상범 대우증권 연구원은 "지난 9월 이후 원 · 달러환율 하락폭을 감안할 때 외국인은 환율 변동으로만 10~12%의 평가이익을 낸 상태"라면서 "지난달 옵션만기 때도 차익실현 시도가 있었지만 원화강세가 지속되면서 청산이 불발로 끝났다"고 설명했다.

G20 정상회의 이후 원 · 달러환율이 더 이상 하락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외국인들의 차익실현 욕구를 부추겼다는 분석이다. 심 연구원은 "G20 정상회의 의장국인 한국 정부가 외환시장에 크게 개입하지 못했지만 정상회의 이후에는 수출 경쟁력 제고를 위해 원화강세에 제동을 걸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더 이상 환율로 수익을 얻기 힘들어졌다고 판단한 외국인이 시장에서 빠져 나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금리가 바닥을 치고 반등했다는 점도 외국인들의 차익거래 매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전균 삼성증권 연구원은 "최근 달러와 원화의 스와프 베이시스가 지난 9월 초 대비 0.8배 정도 높아져 외국인이 달러자금을 조달해 원화로 바꿀 때 드는 비용 부담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코스피 반등하겠지만 상승탄력은 둔화"

강현철 우리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이날 급락은 옵션만기에 따른 왝더독(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현상일 뿐"이라며 "통상 단기급락 후 반등하는 경향이 있어 12일은 반등이 강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학균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도 "국내 증시만 급락했을 뿐 일본 중국 홍콩 등 아시아 주요 증시는 안정적 흐름을 보였다"며 "G20을 포함한 글로벌 변수와 연계된 매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외국인의 매수세에 브레이크가 걸릴 것이란 더 신중한 시각도 나온다. 김세중 신영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이날 대량 매도는 정부가 투기적 외국인 자금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외국인이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며 "최근 유입된 외국인 자금도 매도세로 전환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예상했다.

서정환/강지연 기자 ceoseo@hankyung.com

◆ 옵션

파생상품으로 만기일 특정 가격에 기초자산을 사고팔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코스피200지수옵션은 매달 둘째주 목요일이 만기다. 석 달에 한 번 만기가 찾아오는 주가지수선물과 달리 영향력이 크지는 않지만 만기때 환매를 통해 현금화하는 방법 외에 선물 혹은 현물(주식)로도 갈아탈 수 있어 프로그램 매수(매도)세가 유입되며 지수 등락에 영향을 미친다.

◆ 매수차익잔액

코스피200지수 선물이 고평가되면 비싼 선물을 팔고 값싼 현물을 사서 무위험 수익을 추구하게 된다. 매수차익 잔액이란 이 과정에서 쌓인 현물매수 잔액을 뜻한다. 선물 · 옵션 동시만기일이나 옵션만기일에 프로그램 매도를 통해 대거 청산되기 때문에 증시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

◆ 합성선물

행사가격이 같은 콜옵션(살 권리)과 풋옵션(팔 권리)을 결합해서 선물과 같은 손익구조를 가진 포트폴리오를 말한다. 가령 콜 매수와 풋 매도를 결합한 합성선물은 선물 매수 포지션과 비슷하게 움직인다. 다만 만기가 다르기 때문에 둘 사이 가격 차이(스프레드)가 발생한다. 이 차이가 평균치보다 축소되면 합성선물이 선물보다 고평가된다. 이때 투자자들은 합성선물을 팔고 선물을 사는 '컨버전' 거래를 통해 차익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