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전 인물열전] (26) 노자(老子), 모든 가치 거부한 해체주의자…한무제의 '열린 소통' 원동력으로
주나라의 덕(德)이 무너지고 나라가 찢기면서 몰락하자 분봉된 제후들이 저마다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약육강식의 논법으로 상대를 공격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입지를 구축하기 위해 골몰했다. 상대를 교묘하게 속이는 권모술수가 판을 치고,자신의 약점을 감추기 위한 고도의 눈속임이 도를 더해갔다.

그런 와중에서 제자백가라고 불리는 자들은 저마다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며 제후들을 찾아가 유세하고 자리를 보장받고자 했다. 어떤 일이든 시비와 곡직은 구분하기 어렵고,정도와 사도의 구분도 불분명한 혼란기였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에서 오직 자연의 도와 덕만이 영원히 변치 않는 보편진리라고 말하는 사상가가 있었으니,그가 바로 노자다.

노자는 초나라 사람으로 성은 이(李),이름은 이(耳)이며,자는 백양(伯陽),시호는 담(聃)이다. 주나라의 장서(藏書)를 관리하던 사관출신이다. 사마천은 "해박한 역사지식의 소유자였던 노자가 도(道)와 덕(德)을 닦고 스스로 학문을 숨겨 헛된 이름을 없애는 데 힘썼다"고 평가하면서 "그가 주나라의 몰락을 싫어해 은둔하러 길을 떠났다가 함곡관(函谷關)의 관령(關令) 윤희(尹喜)와의 만남을 통해 이 위대한 사상서 《도덕경》이 탄생했다"고 적었다.

사마천의 지적대로 노자는 《도덕경》 상 · 하편을 지어 '도'와 '덕'의 의미를 5000여자로 말하고 떠나갔다. "어떤 사람은 노자가 양생술을 터득해 160여세 혹은 200여세까지 살았다고 추론하기도 한다"는 사마천의 말은 노자란 인물이 위대한 철학자이면서도 신화적 이미지가 강한 인물임을 대변해준다.

노자가 귀하게 생각하는 도는 허무(虛無)이고,자연을 따르며 무위(無爲) 속에서도 다양하게 변하므로 그가 지은 《도덕경》이란 책은 말이 미묘해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중국 고전 중에서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됐다.

'말할 수 있는 도는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道可道非常道)'란 말로 시작되는 이 책의 첫머리는 언어 자체의 한계를 벗어나야만 제대로 된 의미를 획득한다고 역설한다. 언어를 거부하는 반문화론자 노자는 모든 사물은 그 자체의 이치가 있고,이 이치는 계속 변하기에 인간에 의해 작위적으로 만들어진 언어로 개념화하고 규정짓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냐고 한탄한다.

더구나 상위의 개념으로 모든 사물을 포괄하는 '덕'도 변할 수밖에 없다는 논지는 우리가 덕을 말하는 순간 그 본래의 의미가 이미 상실돼 영원한 덕이 아닌 것으로 뒤바뀐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의 해체요,기존 관념의 해체인 동시에 경전적 위상을 부여해온 성현들의 어록에 대한 해체이기도 하다.

언어의 한계를 인식하고 도와 덕에 관한 초언어의 입장에서 출발한 이 내용이 법가의 창시자격인 한비에 의해 절대 군주의 처세서로 재평가된 것은 대단히 역설적이다. 노자가 원하지 않았을 새로운 해석법을 내놓은 한비에 의해 노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길이 전혀 다른 법가와도 회통 가능성을 열어두었으니 말이다.

[중국 고전 인물열전] (26) 노자(老子), 모든 가치 거부한 해체주의자…한무제의 '열린 소통' 원동력으로
더 중요한 것이 또 있다. '노자한비열전'에 나오듯이,노자는 이미 자신에게 가르침을 받고자 찾아온 공자의 위선을 나무랐지만,공자가 제자들에게 그를 용과 같이 신비한 존재로 각인시키게 만들 만큼 강력한 공감대를 형성한 사상가였다.

노자의 사상은 한비에 의해 계승되면서 한무제가 '겉으로는 도가요 안으로는 법가(外道內法)'란 통치 스타일을 유지하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강력한 중국을 건설하고 54년간이나 재위할 수 있었던 한무제 통치의 힘은 전혀 다른 사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겠는가.

김원중 <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