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아프면 병원으로 달려간다. 기업은 생산제품에 이상이 있으면 어디로 갈까. 물론 1차적으론 자체적으로 해결한다. 하지만 스스로 해결하기 곤란한 것이나 시간이 촉박할 경우 국내 300여개 업체가 서울 구로디지털밸리에 있는 아프로알앤디로 달려간다. 여기엔 현대자동차 LG전자 LG이노텍 삼성전자 삼성테크윈 휴맥스 등도 끼어 있다. 아프로알앤디는 어째서 '기업들의 종합병원'으로 불리는 것일까.

휴대폰은 현대인의 필수품이다. 그런데 만약 키패드나 터치패널이 고장 나면 휴대폰은 졸지에 고철덩어리로 전락하고 만다.

서울 구로디지털밸리 우림이비즈센터에 있는 아프로알앤디(대표 김형태)는 이런 실험을 한다. 우선 휴대폰의 키패드나 패널을 수만번 반복해서 누른다. 보통 3만~5만번 정도 시험한다. 그래도 고장 나지 않아야 합격이다. 수만번 테스트하는 데 3~5일 정도 걸린다.

이 회사의 옆방에는 불에 탄 전자제품이 놓여 있다. 모 아파트 건설업체가 입주 전 서비스로 설치해준 전자제품에서 불이나 왜 불에 탔는지 검사하기 위한 것이다. 같은 전자제품을 들여다 전원스위치를 켠 뒤 어느 부분에서 열이 많이 나는지 감지한다. 열감지카메라가 이를 촬영하는 것이다.

또 다른 방에선 휴대폰을 높은 곳에서 자유낙하시킨다. 그런 뒤 어느 부분부터 파손이 생기는지 초고속카메라로 찍어서 관찰한다.

도대체 무엇을 하는 업체일까. 아프로알앤디는 시험 분석 전문업체다. 특히 재료 · 부품 부분의 불량 여부를 테스트한다. 예컨대 어떤 기계나 전자제품의 경우 영하 30도에서 갑자기 영상 30도로 환경이 바뀌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휴대폰이나 자동차 전장품 속에는 인쇄회로기판(PCB) 위에 저항 콘덴서 반도체 등 각종 금속부품이 붙어 있는데 플라스틱 기판과 금속의 열팽창 정도가 달라 자칫하면 균열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면 고장이 생긴다. 이런 환경변화도 검사한다.

자동차 엔진룸 부근은 겨울철 영하 20도에서 시동을 걸고 조금 달리면 금방 섭씨 영상 100도로 올라간다. 이런 과정에서 근처의 내장부품에 어떤 영향이 나타나는지도 검사한다.

아프로알앤디는 이런 테스트를 해주는 업체다. 종업원은 15명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이 회사에 테스트를 의뢰하는 업체는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거의 망라돼 있다. 현대자동차 LG전자 LG이노텍 삼성전자 삼성전기 삼성테크윈 휴맥스 대우일렉트로닉스 코오롱 유라코퍼레이션 엠아이텍 신한발브 등 300여개 업체에 이른다.

심지어 싱가포르의 아이시리우스 등 외국계 회사들도 이곳에 부품테스트를 의뢰하기도 한다. 왜일까.

첫째,신속 정확한 시험 서비스 때문이다. 이 회사는 금요일 저녁에 의뢰하면 그 다음 주 월요일 오전까지 시험 결과를 고객에게 제출한다. 주말에도 쉬지 않고 테스트를 해주는 것이다. 김형태 사장(42)은 "고객들은 촌각을 다투는 경우가 많다"며 "따라서 주말에 의뢰해도 월요일까지 해답을 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게 정부 산하 테스트 기관과 다른 점이다. 심지어 저녁에 의뢰하면 다음 날 아침까지 시험 결과를 알려주는 경우도 있다. 물론 간단한 테스트일 경우다.

둘째,생산 공정이나 제품의 문제점과 개선방안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단순히 시험 검사에 머물지 않고 어떤 부분이 잘못돼서 이런 결과가 나오는지를 설명하고 그 부분을 개선토록 유도한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휴대폰 케이스에 문제가 있을 경우 금속 소재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고 생산 공정상의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이런 결과를 뽑아내 고객에게 전해주는 것이다. 필요하면 해당 분야에 대한 해결책도 제시한다. 직접 부품을 개발해 주는 것이다.

셋째,우수한 전문인력을 확보하고 있고 전문가들과의 네트워크가 강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성균관대 금속공학과에서 학사부터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이 회사의 임직원 중에는 물리학박사와 공학석사 출신도 있다. 뿐만 아니라 이 회사는 외부전문가 40여명과 네트워크를 결성해 공동으로 작업한다. 이 중에 절반 정도는 박사학위 소지자이며 나머지는 20년 이상 현장경험을 가진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금속의 진동소리만 들어도 어디가 고장이 났고 왜 고장이 났는지 알 정도의 달인들이다.

김 대표는 박사학위 취득 후 모교인 성균관대 창업보육센터에서 2001년 창업했다. 시험 및 연구개발 전문기업을 내걸고 사업에 나섰으나 초기엔 일감이 없고 시험장비를 도입하는 데 돈도 많이 들어 어려움이 컸다.

그는 "미국은 1940년대부터,일본은 1980년대부터 이런 비즈니스가 도입돼 성공적으로 정착했으나 한국에선 낯선 분야여서 고생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장비 하나에 수억원이나 되는 것들도 있어 사업 초기 자금난을 견디기도 힘들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변변한 시험장비가 없으면 사업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그는 전 재산인 아파트 한 채를 담보 잡혀 그 돈으로 3억5000만원짜리 주사전자현미경을 도입하기로 마음먹고 어렵사리 아내에게 말을 꺼냈다. 그러자 아내는 대답했다. "아,뭐가 그렇게 겁이 많아요. 망하면 아무도 모르는 제주도에 가서 풀빵을 팔면 되지."

그 뒤 시편(試片)전처리 장비,내구성 테스트장비,환경시험장비,반복 진동 낙하시험장비 등 수십종을 순차적으로 도입했다. 이들 장비를 시중가격으로 환산하면 약 30억원어치에 이른다. 이 회사는 한국인정기구로부터 '국제공인시험기관(KOLAS)' 인정을 받은 데 이어 국토해양부 산하 항공 · 철도사고조사위원회의 시험분석실도 수탁 운영하고 있다. 항공 · 철도사고조사위원회와 업무협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프로알앤디는 성남산업단지에 추가로 연구개발센터를 연다. 연내에 입주할 이 센터에도 약 20억원어치의 연구개발 장비가 설치된다. 그동안 땀 흘려 번 돈으로 고성능 장비를 도입하는 것이다.

김 대표는 "도요타자동차의 리콜사태 이후 일감이 밀려들고 있다"며 "해외에서도 우리 회사 이야기를 듣고 전자부품의 시험 검사를 의뢰해 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올해 예상매출액은 20억원에 불과하지만 이는 시험검사비만을 매출로 잡기 때문"이라며 "만약 제조업처럼 부품 소재를 구입해서 완제품을 파는 것으로 환산하면 약 150억~200억원에 이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성남의 연구개발센터를 완공해서 본격 가동하는 내년부터는 매출이 크게 늘 것"으로 전망했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