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과 미 항공우주국(NASA)은 지난해 특이한 대학이 설립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특별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발명가이자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 박사가 벤처기업 창업전문가 육성만을 겨냥,설립하기로 한 특수 대학을 전폭 지원키로 한 것이다. NASA는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 내에 위치한 에임스연구센터의 시설 일부를 캠퍼스로 내줬고,구글은 세계적인 석학들을 교수진으로 영입할 수 있도록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다. 그렇게 출범한 대학이 아직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이름조차 생소한 싱귤래리티대다. "10년 안에 10억명의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기업을 만들자"는 모토로 요약되는 세계 최고 창업사관학교의 시작이다.

◆구글,노키아 등 후원자 자처

올해 설립 2년차인 싱귤래리티대의 후원 기업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정보기술(IT) 기업인 e플래너벤처스,오토데스크가 협력사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으며,내년부터는 글로벌 휴대폰 제조사인 노키아도 지원에 나설 예정이다.

싱귤래리티대 설립자인 커즈와일 박사의 비전에 주목한 결과다. 그는 인간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과학기술이 빨리 발전하면서 인간이 생물로서의 한계를 30~50년 내에 뛰어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혁신적인 기술을 실생활에 적용하는 기업들이 계속 나타나 대중의 복리에 기여하고,기술발전을 더욱 촉진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구글은 커즈와일 박사의 이런 비전에 즉각 공감했다. 구글 창업자 중 한 명인 래리 페이지는 지난 6월 이 대학의 입학식에 참석,"대학을 다시 다니게 된다면 어떤 곳보다도 싱귤래리티대에서 공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동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은 자신의 분신 격인 로봇 '브린봇(brinbot)'을 이용해 원격강의를 하기도 했다. 호세 코르데이로 싱귤래리티대 교수는 "2명의 젊은이가 의기투합해 오늘날 세계 최고의 인터넷 포털인 구글을 만들었듯,싱귤래리티대가 혁신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한 창업의 새로운 바람을 불러오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바람은 벌써부터 결실을 맺고 있다. 작년 졸업생 40명을 중심으로 1년 남짓한 기간에 벌써 4개의 기업을 설립한 게 단적인 예다. 그 중 3D 관련 사업을 하는 '아카사(AKASA)'와 하나의 자동차를 여러 사람이 나눠 이용하는 '자동차 공유'라는 새로운 업종을 창조한 '게터라운드(Gettaround)'는 이미 수익을 내고 있다.

◆오로지 창업에 중점을 둔 커리큘럼

싱귤래리티대는 모든 면에서 기존의 대학과 다르다. 대학(university)이란 이름을 갖고 있지만 별도의 석 · 박사 학위를 주지 않는다. '서머스쿨(summer school)'로 불리는 10주간의 단기 대학원 과정과 9일간의 전문가 과정이 있을 뿐이다. 서머스쿨은 작년에 첫 번째 졸업생을 배출했지만 혁신적인 커리큘럼이 입소문을 타며 올해는 전 세계에서 1600여명이 지원했다. 이 중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합격한 학생은 80명에 불과했다.



◆이종분야의 융합을 통한 아이디어 창조

올해 싱귤래리티대 졸업생 80명의 국적은 35개국에 이른다. 경력도 변호사부터 시민운동가까지 다양하다. 코르데이로 교수는 "각기 다른 분야가 융합될 때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며 "싱귤래리티대에서 기술뿐만 아니라 기업가정신,윤리 등을 강의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술의 진보는 사회 전반에 걸쳐 새로운 사업기회를 가져올 것인 만큼 여러 분야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서울대에서 인지과학 관련 석사학위를 받은 고산씨가 싱귤래리티대에서 에너지공학 코스를 밟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코르데이로 교수는 "이미 알고 있는 분야를 싱귤래리티대에서 다시 공부할 이유는 없다"고 못박았다. 이전에 공부한 분야를 계속 연구하기를 바라는 일반 대학들과 싱귤래리티대가 다른 또 다른 점이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 싱귤래리티大

singularity.2009년 미국 캘리포티아주 실리콘밸리에서 설립된 대학이다. 설립자는 레이 커즈와일 박사.싱귤래리티는 '과학기술이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발전해 도달하는 최고 정점'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는 자신의 저서 '특이점이 온다(the singularity is near)'에서 이 용어를 사용했다.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을 사업화하는 벤처 창업자들을 길러내는 게 대학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