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발표된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의 규제개혁 방안은 100여 년간 지속돼 온 포지티브 규제방식을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그간 역대 정부에서 규제개혁을 지속적으로 시도해 왔지만 체감효과가 크지 않았던 것은 포지티브 규제방식을 고수하면서 단순히 건수 위주의 규제개혁만을 추진해 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정부활동의 범위가 다양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줄어드는 규제만큼 새로운 규제가 생겨나는 것을 피하기 어려우므로 그간의 양적 접근은 분명한 한계를 갖는다. 이에 비해 이번 개혁 방안은 '허용'을 원칙으로 하고 '금지'를 예외로 했을 뿐만 아니라 불합리한 인허가 절차 개선 등을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접근이라고 평가된다.

이번 규제개혁 방안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려면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해야 한다. 우선 시행령이나 시행규칙과 같은 하위법령은 법규에 비해 보다 직접적인 규제효과를 가지므로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이를 바꿔야 한다. 겉으로는 드러나 보이지 않지만 중앙정부가 지방정부 행정을 내부적으로 통제함으로써 민간부문에 미치는 간접적 효과가 큰 각종 지침이나 내규에 대한 개선도 필요하다. 규제 대상자에게 실질적인 불편과 피해를 주는 규제는 바로 이러한 눈에 보이지 않는 규제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영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더 좋은 규제(Better Regulation)' 정책은 우리도 참고할 만하다. '더 좋은 규제'는 규제의 부담을 줄이면서도 효과와 규제 대상자의 순응을 제고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를 담고 있다.

가령 규제 도입에 앞서 12주까지 걸리기도 하는 규제 대상자와의 협의 및 규제 시행일의 사전통보제,오염자가 스스로 오염방지 계획을 제출하도록 하는 '신축적 규제',낮은 단계의 규제가 효력이 없을 때만 상위단계의 규제를 허용하는 '규제집행 피라미드제'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예를 참고해 우리도 형식적인 건수 위주의 규제감축 대신 효과성과 규제 대상자의 순응을 제고하려는 질적 노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규제의 양뿐만 아니라 한 건의 규제가 있더라도 그것이 미치는 질적 폐해가 더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규제의 사후적 폐지나 축소뿐 아니라 규제 시행 이전에 대상자와 규제협상을 적극 추진해 불필요한 규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사후관리(after service)를 사전조치(before service)로 전환하는 것도 중요하다.

반면 최소한으로 필요한 사회적 규제마저 불필요한 경제적 규제로 한꺼번에 낙인 찍히는 일이 없도록 유의해야 한다. 얼마 전에 부산의 고층주상복합 건물에서 발생한 화재사건에서 보듯이 안전과 재난에 관련된 규제나 범죄예방을 위한 사회안전망 관련 규제 등은 흥정이나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오히려 더욱 강화돼야 할 부분이기 때문이다. 피규제집단의 도덕적 해이 방지도 중요하다. 네거티브 방식의 성공 여부는 규제가 없더라도 피규제집단이 자율적으로 사회적 공익창출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리라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피규제집단 스스로 빌미를 제공해 또다시 규제 강화를 불러오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규제개혁안이 또 다른 구호성 작품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집행과정에서 실질적인 개선효과가 발생할 수 있도록 하위 법령이나 내규를 면밀하게 모니터링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동시에 규제자와 피규제자 간에 사회적 신뢰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그동안의 양적 규제가 규제의 부담을 줄이면서 효과와 순응을 제고하는 질적 규제로 무리없이 전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윤석 < 숭실대 교수·행정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