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를 무대로 한 국제 환율전쟁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주요 20개국(G20) 경주 재무장관 · 중앙은행총재 회의에서 미국이 제안한 '경상수지목표제'에 대해 당초 반대 의사를 표명했던 일본이 22일 저녁 미묘한 입장 변화를 시사하면서 환율전쟁은 50 대 50의 팽팽한 접전으로 흐르고 있다.

◆미국 '경상수지목표제' 추진

티모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은 이날 장관급 회의 개막에 앞서 선진 7개국(G7) 재무장관들과 별도 회동을 갖고 미국 측 입장 설득전에 나섰다. 그는 경상수지 흑자 규모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4% 이내로 제한하자고 제안했다. 이어 장관급 회의에서도 가이트너 장관은 경상수지 목표제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일관된 주장을 폈다.

회의에 앞서 지난 20일에는 G20 회원국 장관들한테 "향후 몇 년간 무역수지 불균형을 GDP의 특정 비중 수준 이하로 줄이자"는 편지도 전달했다. 그는 편지에서 "자원 부국의 경우 예외가 될 수 있지만 무역수지 흑자가 과다한 국가는 재정 · 통화 정책을 써서 불균형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경쟁우위를 얻기 위해 환율정책을 이용하지 말라"고 각국에 주문했다.

가이트너 장관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최근 양적완화 조치에 대해서도 "달러화 가치 절하를 위한 게 아니라 절상을 위한 것"이라며 "달러 절하를 용인할 의도가 없다"고 변호했다. 달러의 추가 절하에 반대하는 입장을 강조해 중국 위안화 절상을 압박하겠다는 의도다.


◆신중한 입장으로 선회한 일본

일본은 당초 이날 오전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이 제안한 '경상수지목표제'에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노다 요시히코 일본 재무상은 이날 경주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외 무역수지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경상수지목표제는 현실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중국처럼 대미(對美) 무역흑자를 내는 일본 입장에서는 미국이 밀어붙이는 '경상수지 흑자 축소를 통한 환율 조정'이 그다지 달갑지 않기 때문이다.

노다 재무상은 그러면서도 중국을 겨냥한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환율문제에 대해 "견고하고 안정된 국제 금융시스템의 공통 이익이 논의돼야 한다"며 "환율은 그 나라의 펀더멘털(경제기초여건)을 제대로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저평가된 위안화 가치의 절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노다 재무상은 그러나 G7 재무장관 회담이 끝난 후 미묘한 입장 변화를 보였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노다 재무상은 "엄격한 경상수지 폭에 대한 제한은 좀 그렇지 않나"라면서도 "각각의 진행 상황에 대한 진척을 체크할 때 참고치로 쓴다면 어떨까 하고 현 단계에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니혼게이자이는 노다 재무상의 발언과 관련,조건에 따라 미국의 제안을 용인할 수 있는 자세를 보인 것으로 풀이했다.

◆팽팽히 엇갈린 이견

미국의 제안에 호주 캐나다 등은 지지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웨인 스완 호주 부총리 겸 재무장관은 이날 "미국의 제안은 글로벌 경제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하나의 접근 방법으로 '건설적(constructive)'"이라고 말했다.

반면 유럽의 경제대국인 독일과 중국 인도 등 신흥국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독일은 "계획경제적인 사고방식"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특히 최근 기준금리 전격 인상을 통해 위안화 절상압력을 완화하려 했던 중국은 미국을 비롯한 일부 G7 국가들이 '경상수지 목표제'를 밀어붙이자 당혹스런 표정이다. 경주회의에 참석한 셰쉬런 재정부장은 이날 오전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개별 양자면담에도 나오지 않았다.

재정부 관계자는 "일정이 변경되면서 서로 맞지 않아 그렇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G20 의장국인 한국이 미국 측 환율 조정안을 갖고 설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중국 측이 부담을 느껴 자리를 피한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정종태 기자/경주=서욱진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