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맘에 드는 외투가 있어 가게 앞에 섰다. 점원이 다가와 '이거 탈북자도 가능하고요!' 하는 말에 '쿵!' 하고 가슴이 내려 앉았다. 내가 탈북자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안절부절하고 있는데 점원이 외투 안쪽 지퍼를 쭉 내려 보였다. 아! 점원의 말은 '이거 탈부착도 가능하고요'였구나. "

1990년대 이후 경제난으로 북한에서 남한으로 온 새터민은 줄잡아 2만여명.그 가운데 이 책 《서울에서 쓰는 평양 이야기》의 저자인 주성하(가명)는 단연 이색적인 인물이다. 탈북자 중 20명가량 된다는 김일성대학 출신인 데다 동아일보의 공채에 당당히 합격했으니 말이다. 저자는 지금 방문자 수 누계가 1500만명을 넘는 파워 블로거이기도 하다.

책은 그동안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저자의 블로그 글 가운데 일부를 간추린 것이다. 공식적으로 신문에 쓴 기사가 아니라,어깨에 힘을 빼고 쓴 글이라 더 정감있고 흥미롭다. 분단 조국의 현실에 현미경을 들이대는 것부터 시작해 북한 주민들의 삶과 실상,영화와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남한 사람이 궁금해하는 것들을 망라했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8강에 진출한 북한 축구 대표팀 주역들이 카퍼레이드가 끝나기가 무섭게 정치적 희생양이 되어 숙청된 사연,함경북도에 주둔한 6군단이 1994년 쿠데타를 모의했다가 발각돼 모두 처형된 일 등 그동안 뉴스로 접할 수 없었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가감없이 전해준다.

또 아무리 태워도 글씨가 사라지지 않는 '수지종이' 삐라를 처음 접하고 남한을 동경했던 일,김일성 사망 당시 김일성대학 학생들이 동상을 지키며 이른바 '호상'을 하게 된 배경 등은 북한에서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생생한 이야기다.

"노래 '아침이슬'을 부른 가수가 양희은이라는 것을 한국에 와서야 알았다. '아침이슬'은 북한 사람들이 즐겨 불렀다. 나는 '구국의 소리' 방송을 통해 나가는 대남 방송용 노래인 줄로만 알았다"는 저자에게 남한은 이제 두말할 것도 없이 조국이다. 그가 서두에서 '남북이 하나 되는 날,내가 맛본 자유주의의 단맛을 북한 주민들과 함께 나누겠다"고 한 말은 물론 우리 모두의 바람이기도 하다.

전장석 기자 sak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