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하 700m에 갇혀 있던 칠레 광부의 구출은 휴먼드라마 그 자체였다. 매몰 광부들은 구조에 앞서 '당신부터(You First)'를 외쳤다고 한다. 구출 가능성을 확신한 데 따른 미덕이었겠지만 세계인의 감동을 자아내기에는 충분했다. 그들의 연대의식과 동료애가 그들 모두를 살린 것이다.

아름다운 '당신부터'가 있다면,추한 '당신부터'도 있다. 최근의 환율전쟁이 그것이다. 환율전쟁의 근저에는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출구전략에서 각국의 '이해 불일치'가 자리잡고 있다. 유동성을 정상 수준으로 되돌리는 출구전략에서 국제공조를 이끌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은 유동성을 회수하지 않은 채 상대국만 유동성을 회수해 상대국의 통화가치가 높아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환율전쟁은 상대국의 희생 위에서 자신의 경제회생을 꾀하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당신이 먼저 희생하시오'는 추한 '당신부터'다.

환율전쟁은 기본적으로 '글로벌 달러약세'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국의 만성적인 쌍둥이 적자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의 요인으로 달러 약세가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각국은 달러 대비 강세로 돌아선 자국 통화의 가치를 안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물론 직접적인 촉발요인은 미국과 중국 간의 위안화 평가절상 논쟁이다. 중간 선거를 앞둔 미국 오바마 정부에 경기 회복은 발등의 불이다. 저평가된 위안화 가치를 높여 미국의 무역수지를 개선함으로써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급할 것이 없다. 중국은 경제패권을 추구하지 않으며 'G2'에 걸맞은 경제력을 갖추지 못했다면서 방어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무역불균형은 세계적 생산 질서의 재편에 따른 결과일 뿐 중국의 의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위안화 절상 압력에는 '화폐주권 수호' 차원에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위안화 절상이 미국 경제를 회생시키는 지렛대가 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미국은 이미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에 '중독'돼 있다. 중국 위안화가 오른다고 중국 제품의 소비를 줄이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미국 소비자들이 저축을 늘리고 소비를 줄이는 방향으로 행태를 바꾸지 않는 한,위안화 평가절상이 무역수지를 개선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

미국 제조업의 취약한 경쟁력도 제약요인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미국 입장에서 위안화 절상이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될 수 없다. 정작 중요한 불균형의 원천은 미국의 산업구조다. 구조개혁이 필요하다.

중국은 지난 6월18일 미국의 집요한 압력으로 '환율제도의 유연성'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선언 이후 첫 거래일인 6월21일부터 10월15일까지 위안화 가치는 달러 대비 2.6% 절상됐다. 같은 기간 동안 '원,엔,유로화 가치'는 달러 대비 각각 5.2%,9.8%,13.3% 절상됐다. 위안화는 경쟁국 통화에 대해 오히려 평가절하된 것이다. 시장의 힘으로 이런 평가 절하가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상대방 통화가치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평가절상 속도를 조절한 결과다. 문제는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괘념치 않는다는 중국의 태도다. 하지만 중국은 자신을 예외로 할 만큼 영향력이 작은 나라가 아니다.

환율전쟁은 이웃국가를 가난하게 하는 제로 섬 게임이다. 당장은 수출이 늘겠지만 모든 나라의 수출이 늘 수는 없다. 결국은 '서로 망하기 경쟁'이다. 소모적인 환율전쟁을 끝내려면 G2가 변해야 한다. 평가절하가 구조개혁을 대신할 수 없으며,시장을 통한 환율 결정에 예외가 존재할 수 없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단기적인 국가 이익에서 벗어나,세계 시민으로서의 행동 준칙을 따라야 한다. '불편한 진실'은 G2가 의도적으로 이러한 사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 /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