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 상장 및 코스닥 법인에 대해 국제회계기준(IFRS) 적용이 의무화되는 2011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 국가들이 도입 시기를 확정하지 않고 어물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본거지인 유럽계 국가를 빼고 나면 최대의 승부처인 한국에서의 안정적 정착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국제회계기준위원회의 주요 간부들이 현안 논의를 위해 잇달아 방문했고 지난 주에는 국제회계기준재단 이사회가 서울에서 개최됐다.

이번 서울 이사회에서는 공인회계사 자격을 보유하고 있는 정덕구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 한국인 최초로 재단 이사로 선임됐다. 국제회계기준재단 이사장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훌륭한 신임 이사가 특히 아시아 지역을 대표해 강력한 목소리를 내줄 것을 바란다"는 찬사와 희망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회계는 각국의 경제상황 및 거래 관행의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거액의 수주대금을 외화로 장기간 분할해 받는 조선업의 경우 환위험 헤지와 관련된 회계 처리가 논란거리다. 국제회계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면 헤지 거래를 통해 환율변동 위험을 효과적으로 감소시키더라도 회계상으로는 손익 변동폭과 부채 규모를 오히려 확대시키는 모순을 유발한다. 고정 환율을 고수해 환위험에서 자유로운 중국은 한국 조선업의 국제회계기준상의 함정에 쾌재를 부르며 국제적 입찰 경쟁에서 한국 기업은 재무수치가 불량하다고 꼬집고 있다.

건설업의 수익계상 방식도 문제다. 우리 건설업은 고층 공동주택 중심으로 시공 초기부터 선(先)분양을 실시하는 특수성이 있다. 분양 대금을 연속적으로 받는 장기 대규모 공동주택 공사는 공사진행률에 따라 연도별 수익을 인식하는 게 합리적이다.

그러나 국제회계기준에선 단기간에 건축되는 단독주택 중심의 주택 공급을 상정한 인도기준을 정하고 있어 우리 건설업이 그대로 수용하기 어렵다. 정부와 회계학회 및 업계가 공동노력해 우리의 특수 상황이 적절히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국제회계기준은 또 원칙 중심의 회계방식이라 종전의 규정 중심 기준에 비해 적용 방식이 명확하지 않다. 회계수치는 공정거래 규제와 법인세 부과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회계기준 해석상 착오가 과징금이나 가산세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연결재무제표를 주된 재무제표로 정하고 있는 국제회계기준에 따라 자회사의 재무상황을 통산하다 보면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지위의 변동을 초래할 수 있다. 법인세법에서는 다른 법인으로부터 받은 배당수익 중 일부를 익금에서 공제하는데 지주회사에 해당될 경우 공제 비율을 높여주는 우대 규정을 적용한다. 따라서 국제회계기준 적용으로 지주회사 요건에서 이탈할 경우 법인세 부담이 급증하는 상황도 생길 수 있다. 차제에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배당수익 공제 비율도 지주회사 수준으로 통일할 필요가 있다.
국제회계기준은 자산과 부채를 동시에 표시하는 규정이 많은데 이 경우 재무에 미치는 영향은 없으나 부채를 자본으로 나눈 부채비율은 높아진다. 금융기관이 거래의 실질을 따지지 않고 부채비율 변동에 따라 대출을 규제하거나 주식 상장을 제한할 경우 심각한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

국제회계기준을 경쟁국가보다 먼저 채택한 결단을 통해 우리나라 회계 투명성은 개선되겠지만 기업에는 큰 짐이 된다. 기업 부담을 줄이기 위해 도입 후 2년 또는 3년 동안 고의적 회계부정 이외의 기준 해석상 착오에 따른 오류는 처벌을 유예하고 공정거래,금융규제 및 세법 적용상 불리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종전 회계기준에 따른 수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만우 < 고려대 교수·경영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