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담합(부당공동행위)에 가담했더라도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 없이는 형사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기업의 담합행위에 대한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확정지은 첫 판례다. 이번 판결은 지난 20여년간 공정위 · 기업 · 검찰 간 끊임없이 벌여온 담합 처벌 논란을 마무리지은 것으로 평가된다.

대법원 3부(주심 안대희 대법관)는 제품 생산량과 판매가격을 담합한 혐의(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로 기소된 호남석유화학과 삼성토탈 및 임원 2명에게 공소 기각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3일 밝혔다.

재판부는 "현행법상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 담합에 대한 검찰기소가 가능하므로,고발 대상에서 제외된 호남석유화학과 삼성토탈 등에 대한 공소 제기는 무효"라며 "형사소송법상 고소불가분의 원칙을 공정위 고발에 유추적용할 수 있다는 검찰의 해석은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담합에 깊이 가담한 기업이 자진신고하거나 조사에 협조해 형사고발을 면제받는 등 형평성 문제가 있더라도 검찰총장의 고발 요청권 등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에 대한 보완책이 마련돼 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2007년 삼성토탈,호남석유화학,SK,LG화학 등 7개사가 1994~2005년 합성수지 판매가격을 담합한 사실을 적발,105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SK 등 5개사를 고발했으나,자진신고한 호남석유화학과 삼성토탈은 제외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담합에 대한 고발권은 공정위에만 있으며,검찰은 검찰총장을 통해 공정위에 고발을 요청할 수 있다. 검찰은 1980년대 후반 벌어졌던 '백화점 변칙세일'사건을 공정위가 고발하지 않은 데 대해 반발,독점규제법 대신 사기죄로 기소한 이후 지난 20여년 동안 줄곧 공정위,기업들과 갈등을 빚어왔다. 검찰 관계자는 "담합을 주도하고 다른 업체보다 큰 이익을 얻은 기업들이 자진신고제를 악용해 행정 제재뿐 아니라 형사처벌까지 피하는 것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법무법인 화우의 공정거래팀 소속 김재영 변호사는 "담합행위를 자진신고하면 행정제재와 형사처벌 모두 면제된다는 게 이번 판결로 확정돼 앞으로 자진신고가 더 활발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