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흔드는 것인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인가. 아니면 우리 내부인가.

정말 어이가 없다. 오바마 행정부가 한 · 미 FTA의 조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그렇다고 치자.야4당 의원들이 재협상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은 도대체 무슨 의도인지 납득이 안된다. 민주당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한 · 미 FTA는 자신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협상을 타결지었다. 그런 정당이 '재협상' '전면 재협상'을 서슴없이 내뱉으면 과연 그들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참여정부는 2007년 4월 한 · 미 FTA 협상을 성사시켰다. 그러나 그 뒤 그들이 국회 비준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보는 국민은 거의 없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선(先)비준' 논리를 들고 나올 게 예상되자 지금의 민주당은 '선(先)대책 후(後)비준' 논리로 대응했다. 야당이 됐다고는 하지만 협상을 성사시킨 당사자의 논리치고는 궁색했다. 민주당은 다른 논리도 개발했다. 우리 국회가 먼저 비준을 했다가 미국이 재협상이라도 요구하면 곤란한 상황에 빠져 한 · 미 FTA가 깨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가 폭발하고 선거기간 중 한 · 미 FTA 협상에 문제를 제기했던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되자, 민주당은 재협상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불을 지핀 것은 한 · 미 FTA 협상의 직접적인 당사자라고 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었다. 금융위기로 경제환경이 바뀌었다는 점을 그 이유로 들었다.

그리고 지금,한 · 미 간 실무협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자 민주당 일부 최고위원들은 기다렸다는 듯 재협상,전면 재협상을 주장하고 있다. 사실상 한 · 미 FTA 자체를 반대하거나, 이 참에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만 빼자는 자기중심적 논리를 들이대는 정치인이 있는가 하면 참여정부 때 장관을 지내놓고선 재협상하자며 말을 바꾸는 이도 포함돼 있다.

그나마 책임의식을 느끼는 정치인은 정세균 최고위원 정도다. 참여정부 당시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그는 한 · 미 FTA가 이익의 균형을 맞춘 협상이기 때문에 재협상을 하면 안된다고 말한다. 재협상을 할 바엔 차라리 한 · 미 FTA를 파기하는 게 낫고,또 그렇게 나가야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그가 그런 생각을 했다면 왜 선(先)비준 카드를 지금까지 거부했는지 묻고 싶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르겠지만 정당의 신뢰성이 땅에 떨어지기 직전이다.

여당인 한나라당이 민주당을 비난하지만 그들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정권을 잡았지만 여당은 시간을 허비했다. 쇠고기 문제,촛불시위 등을 핑계 대겠지만 정치력도,리더십도 없는 그들의 선(先)비준 논리는 공허한 것이었다. 정치적 계산에 따라 야당과 같은 논리를 주장하는 여당 의원들도 적지 않았고 보면 특히 그렇다. 오바마가 당선된 뒤에야 부랴부랴 비준을 서둘러야 한다고 나선 여당의 모습은 '전략부재' 정권의 극치였다. 모두가 '정치적 공범'들이다.

미국이 아무리 강대국이고 경제사정이 다급하다고 해도 합당한 논리도 없이 일방적으로 나오기는 어렵다. 누울 자리가 있어야 다리를 뻗는 법이다. 한 · 미 FTA 협상이 타결된 지 3년 6개월이 지나도록 국회 비준도 하지 않고,스스로 재협상 얘기를 꺼내는 국내 정치권의 분열 양상을 미국이 모를 리 없다. 한 · 미 FTA가 깨지는 최악의 상황이 초래되면 과연 누구를 탓해야 하는가.

안현실 <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