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전쟁의 격전지가 될 것으로 보이는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중국의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미국은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다른 나라는 문제삼지 않은 채 중국만을 겨냥해 압박을 가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지난 6일 중국과의 정상회담에서 위안화 절상을 강력하게 요구해 환율전쟁에서 미국 편에 섰다. 주요 국가 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어 오는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서 '휴전'에 합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미국,환율전쟁에서 중국 정조준

미국이 환율전쟁의 주적으로 중국을 지목했다. 그동안 일본의 외환시장 개입에 대해 발언을 자제해온 티모시 가이트너 재무부 장관은 이날 일본의 외환시장 개입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발언을 했다. 그는 "일본의 외환시장 개입이 시장에 해로운 문제를 야기했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전날 재무부 관계자가 우회적으로 일본의 시장개입을 비난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환율문제를 거론할 8일 IMF 총회를 앞두고 미국이 일본을 동맹국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한다. 브라운브러더스해리먼앤드코의 마크 챈들러 통화전략담당 대표는 "미국이 일본의 시장개입을 묵인하는 대신 위안화와 다른 아시아통화의 절상을 이끌어 내려 한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블룸버그 통신은 "가이트너 장관이 이번 주에 IMF 총회와 선진 7개국(G7) 재무장관 회의에서 EU와 일본의 재무장관들을 만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G7이 손을 잡고 위안화 절상을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캐나다는 G7 재무장관 회담에 앞서 워싱턴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국의 위안화 절상을 촉구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EU · 중국 환율전쟁도 격화

"중국은 글로벌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협력해야 한다. "(헤르만 판 롬파위 EU정상회의 상임의장) "중국에 통화절상을 강요하지 말라."(원자바오 중국 총리)

지난 6일 열린 EU · 중국 정상회담은 공동 기자회견이 전격 취소된 채 끝났다. 롬파위 EU 상임의장,주제 마누엘 바로수 EU 집행위원장과 원자바오 중국 총리 간 열린 정상회담에서는 기후변화,지식재산권 보호,인권 문제 등 중국이 껄끄럽게 여길 수밖에 없는 현안이 광범위하게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위안화 절상 문제를 둘러싸고 평행선을 달리면서 별다른 합의를 보지 못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EU 관계자는 "EU 측은 위안화가 현실의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며 "글로벌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중국의 역할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원자바오 총리는 이에 대해 "중국과 EU의 무역 불균형은 경제구조적인 문제"라며 "이를 정치화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원 총리는 또 "위안화가 급속히 절상되는 등 불안정성이 심화될 경우 중국은 물론 세계경제에도 큰 혼란이 야기될 것"이라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폴 그로베 루뱅대 교수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유럽중앙은행(ECB)은 비유럽국가의 채권을 사는 방식으로 다른 나라의 통화가치를 올려야 한다"며 EU의 환율전쟁 참여를 촉구했다. 그는 "지금처럼 유로화가 위안화 대비 절상되면 유럽은 중국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환율전쟁의 중재 역할 떠맡은 한국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서울국제경제자문단 오찬에서"G20 정상회의에서 여러 가지 현안,환율문제 등 국제공조를 논의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해 환율문제를 의제로 다루겠다는 뜻을 밝혔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G20 정상회의에서 환율문제가 주요 의제로 거론되는 것에 부담을 갖고 있었다. 글로벌 금융안전망 구축,국제금융기구 개혁,저개발국 지원 등 정부가 그동안 야심차게 준비해온 핵심 의제가 뒷전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IMF와 미국이 G20회의에서 환율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회피할 경우 중국 등 다른 국가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도 이런 현실을 감안,국제적 핫 이슈를 피하기보다는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환율문제를 놓고 선뜻 누구의 손을 들어주기가 어렵다는 점이 고민이다. 미국 일본 EU 등 선진국들은 중국을 환율전쟁의 진원지로 지목하고 있지만 중국과 신흥국들은 "미국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며 맞서고 있다. 시몬 데릭 뉴욕멜론코프은행 수석통화전략가는 "1조달러의 국채 매입에 대해 미국은 단지 경제회복을 위한 조치였다고 말한다"며 "그러나 다른 나라에서는 달러 가치를 낮추기 위한 시장개입과 다를 바 없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태완 기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