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인쇄용지 업체와 신문용지 업체가 교과서용 종이 시장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교과서용 종이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재생지' 납품자격을 놓고 팽팽히 맞서는 양상이다.

7일 업계에 따르면 교육과학기술부는 매년 9월 말 이듬해 검정교과서 제작에 사용할 종이 공급업체를 선정하는 입찰을 실시한다. 입찰품목은 재생지와 일반 인쇄용지,아트지 등 세 종류로 이 가운데 재생지 비중이 70%를 차지한다. 올해 정부가 2011학년도 교과서용으로 구입하는 종이량은 총 3만6458t.이 가운데 재생지는 전체의 70.5%인 2만666t이며 일반 인쇄용지는 8562t,아트지는 7230t이다. 지난달 실시한 내년도 교과서용지 입찰 결과 일반 인쇄용지는 한솔제지와 그 계열사인 아트원제지가 모두 낙찰받았으며 아트지는 홍원제지가 단독으로 낙찰받았다. 가장 비중이 큰 재생지는 한솔제지 1만2000t,전주페이퍼 5666t,한국제지 3000t을 할당받았다.

문제는 재생지의 기준을 놓고 입찰자격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정한 교과서용 재생지의 기준은 △지식경제부 산하 자원순환산업진흥협회로부터 우수재활용제품 인증마크(GR마크)를 받은 업체가 △30% 이상 국내산 폐지를 이용한 재활용 펄프로 만든 제품이다. 현재 GR마크를 받은 업체는 한솔제지 무림페이퍼 한국제지 아트원제지 등 4개 인쇄용지 업체와 전주페이퍼 대한제지 등 2개 신문용지 업체 등이다. 정부 규정에 따르면 이들 6개사 모두 교과서용 재생지를 공급할 자격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신문용지 업체들은 GR마크의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는 '폐지'에 대한 정부 기준이 너무 엉성하다고 지적했다. '폐지'라는 건 한 번 사용한 종이를 말하고 이를 재활용하기 위해선 폐지에서 잉크를 제거하는 DIP(De-Inking Pulp)장비를 갖춰야 하는데,현행 규정상으로는 DIP장비 없이 제작과정에서 나오는 파지나 불량품을 재활용해도 GR마크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DIP장비를 갖춘 곳은 한솔제지와 전주페이퍼,대한제지 등 3곳뿐이다. 전주페이퍼 관계자는 "지금 규정대로라면 교과서 용지도 폐지를 재활용해야 한다는 당초 취지와 맞지 않는 업체들이 교과서 입찰자격을 얻게 된다"며 "재생지 기준을 DIP장비를 갖춘 업체가 폐지를 활용해 만든 펄프를 사용한 종이로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DIP장비를 갖추지 않은 인쇄용지 업체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입장이다. 재활용이란 개념 자체에 폐지뿐 아니라 파지를 다시 사용하는 것도 포함돼 있기 때문에 DIP장비 설치 유무와 교과서 입찰자격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GR마크 인증을 담당하는 자원순환산업진흥협회는 일단 신문용지 업체들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재활용을 확대하자는 취지상 그에 필요한 장비를 갖추는 건 당연하지만 그동안 제지업계에 대해서는 그 기준이 미비했다"며 "이달 말께 기술표준원을 통해 제지업계에 대한 새로운 GR인증 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연간 450만t에 달하는 국내 인쇄 · 신문용지 시장의 1%도 안 되는 교과서용 종이시장을 두고 업체 간 신경전을 벌이는 까닭을 '시장 포화'에서 찾는다. 인쇄용지나 신문용지 시장이 업체 간 과잉경쟁으로 치닫다 보니 규모는 작지만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해주는 교과서용 종이 쪽으로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작년부터 교과서용지에 재생지를 포함시킨 데 이어 재생지 비중을 늘릴 계획이어서 앞으로 이 시장을 잡기 위한 종이업체 간 신경전은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