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일본 과학자의 연구 성과가 액정표시장치(LCD) 등 일본 산업 경쟁력의 기초가 됐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일본 경제가 20년 가까이 뚜렷한 성장을 하지 못하고 정체돼 있지만 산업의 기초 실력만큼은 세계적 수준이란 점을 다시 한번 과시한 것이다.

지난 6일 발표된 올해의 노벨화학상 수상자 3명 가운데 미국 리처드 헤크 델라웨어대 교수(79)를 제외한 두 명이 일본인이다. 주인공은 스즈키 아키라(鈴木章) 홋카이도대 명예교수(80)와 네기시 에이이치(根岸英一) 미 퍼듀대 교수(75).이들은 의약품이나 전자재료 등 다양한 공업물질을 효율적으로 합성할 수 있는 혁신적 유기합성법을 개발한 업적으로 노벨상을 받게 됐다.

플라스틱 등 공업물질의 대부분은 탄소가 복잡하게 연결된 유기물이다. 그러나 탄소를 자유자재로 결합해 원하는 유기물을 인공적으로 만드는 건 쉽지 않다. 이걸 팔라듐(Pd)이란 촉매를 이용해 탄소가 쉽게 결합되도록 고안해낸 게 스즈키 교수와 네기시 교수다.

이 방법을 통해 복잡하고 다양한 기능을 가진 유기물을 만들어내는 게 가능해졌다. 그 결과물이 LCD와 유기EL의 소재, 의약품이나 농약의 합성물 등이다. 특히 이 기술을 응용한 LCD 소재는 일본의 LCD 패널 등에서 경쟁력을 뒷받침했다. 지소라는 일본 회사가 1990년대 중반 이 기술을 액정재료의 합성에 응용해 관련 제품 양산을 시작했다. 액정재료는 TV와 PC(개인용 컴퓨터) 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돼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일본의 화학원료 회사인 도소 관계자는 "스즈키 교수 등의 연구 성과가 없었다면 지금 LCD TV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기대되는 유기EL재료도 이 기술에 의존한다. 특히 스즈키 교수 등은 이 유기물 합성법을 특허로 등록하지 않아 어떤 기업이든지 손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LCD TV 분야에서 일본 기업이 한국의 삼성전자 등에 뒤지고 있지만, 삼성이 생산하는 LCD의 소재나 다양한 필름 등은 대부분 일본산"이라며 "일본의 기초화학 분야 경쟁력은 여전히 강하다"고 평가했다.

한편 네기시 교수는 노벨상 수상이 결정된 직후 기자회견에서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해외로 나가서 무한한 능력을 발휘하라"고 말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