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 미국의 렌터카 브랜드 1,2위 경쟁은 허츠(Hertz)와 에이비스(Avis) 차지였습니다. 허츠는 여러가지 슬로건을 썼는데,'우리는 허츠입니다. 그들은 아니고요'란 슬로건만 보더라도 최고 강자로서 얼마나 자부심이 컸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반면 에이비스는 '우리는 2등이기 때문에 열심히 한다'는 전략으로 유명하죠.2등임을 인정했던 것이 오랜 시간 선두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요인입니다. 이렇듯 재미있는 전략과 사례가 탄생한 곳이 미국의 렌터카 시장입니다. 이런 미국의 렌터카 시장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신흥 강자로 불리는 엔터프라이즈(Enterprise) 렌터카가 오랫동안 강자로 군림했던 허츠를 물리치고 1위로 등극했습니다. 그 비결은 뭘까요.

여러분은 어떤 경우에 렌터카를 이용하십니까. 여행이나 출장 등 다양한 경우가 있을 겁니다. 미국은 동부와 서부 간에 3시간이나 시차가 날 정도로 큰 대륙이기 때문에 렌터카는 주로 여행과 관련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에서는 다른 주(州)로 가고 싶을 때 비행기를 타고 이동한 뒤 공항에서 렌터카를 빌려 움직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허츠와 에이비스는 주로 공항 주변에 매장을 두고 있습니다. 그만큼 여행과 관련한 렌터카 사용 빈도가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후발 주자인 엔터프라이즈 렌터카는 두 강자들이 이미 장악하고 있는 시장에서 승부를 건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 회사의 고민은 허츠와 에이비스가 놓치고 있는 시장을 찾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엔터프라이즈 렌터카가 발견한 틈새시장은 이랬습니다. 개인의 자동차가 파손이나 훼손됐을 때 차를 수리하는 동안 보험사가 다른 자동차를 렌트해 주는 데 착안,여행과 무관한 시장을 파고들어 보자는 것이었죠.실제로 그런 시장이 존재했고,엔터프라이즈 렌터카는 블루오션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허츠와 에이비스는 여행자를 중심으로 영업을 했기 때문에 영업점이 대부분 공항에 입점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자동차를 도난당하거나 차가 파손되는 경우는 주로 주택가나 사무실처럼 사람들이 생활하는 지역입니다. 공항은 비행기 소음이 크고 이 · 착륙을 위한 활주로가 확보돼야 하기 때문에 도심지역과는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생활지역에서 자동차가 파손되거나 도난당했을 때 렌터카를 빌리기 위해 공항까지 가는 것은 상당히 불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렌터카 매장이 주로 공항 주위에 있다는 거죠.

엔터프라이즈는 이런 틈새시장을 노리고 주택가에 자신들의 영업점을 두는 전략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그래서 자동차가 파손되거나 도난당했을 때 멀리 공항까지 나가서 렌터카를 빌려오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서 손쉽게 렌터카를 쓸 수 있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기존의 강자들이 놓친 시장이 생각보다 컸다는 사실입니다. 엔터프라이즈 렌터카는 틈새시장을 명확하게 공략했기 때문에 독식할 수 있었고,단기간에 급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신흥시장이 커가는 것을 보고 허츠와 에이비스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습니다. 뒤늦게 영업장을 주거시설 가까이에 설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소비자들 머리 속에는 이미 보험과 관련한 렌터카는 엔터프라이즈의 서비스가 좋다는 인식이 박혀 있었기 때문에 시장을 쉽게 뺏을 수 없었습니다. 엔터프라이즈의 상승세는 허츠와 에이비스가 오랜 시간 군림했던 렌터카 시장을 단숨에 탈환하는 저력으로 나타났습니다.

엔터프라이즈는 새로운 1위로 등극한 이후 비즈니스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공항에서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비즈니스 확장을 하는 상황에서도 주택가나 사무실 근처에 입점한 기존의 영업점을 90% 이상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신들이 발견한 틈새시장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더 넓은 시장에 대해 욕심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자신들의 사업에서 기본이 무엇이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잊지 않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비즈니스의 핵심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또 하나의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최근 비즈니스 위크가 산정한 소비자 서비스지수에서 기존의 강자였던 허츠가 26위에 그친 반면 엔터프라이즈 렌터카는 14위를 차지했습니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선발 주자가 군림하고 있는 시장에서 후발 주자가 정면으로 승부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처럼 무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욕구는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시장의 볼륨만을 생각하고 위험한 시도를 하는 것보다,작지만 내가 명확하게 공략할 수 있는 틈새시장을 먼저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시장에서 아직 충족되지 않은 욕구를 찾는다면 나만의 비즈니스를 키워 갈 수 있습니다.


황성욱 서울디지털대 교수










정리=이주영 한경가치혁신연구소 연구원 ope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