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반 만에 솔로 4집 '사랑' 발표..타이틀곡 '그대랑'

이적(36)은 그간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해 꽤 거리감을 둬온 싱어송라이터다.

그는 솔로뿐 아니라 패닉ㆍ카니발ㆍ긱스 등의 그룹으로 활동하며 '거위의 꿈'처럼 운명을 개척하라고 했고 불가능한 이상을 좇는 인간의 모습을 '달팽이'에 비유했다.

또 선입견에 고통받는 사회 소수자를 '왼손잡이'로 그렸다.

이번 4집 '사랑'에서는 작심하고 전곡을 사랑 이야기로 채웠다.

2007년 솔로 3집 중 '다행이다'가 청혼가로 널리 불려 4집의 맛뵈기가 된 셈이다.

유부남에 지난 4월 아빠가 된 그가 대중에게 다가설 주제치고는 타이밍이 아이러니컬하다.

27일 여의도에서 인터뷰를 한 이적에게 이말을 꺼내자 그는 웃음부터 터뜨렸다.

"예전에도 음반마다 한두곡 사랑 노래가 있었지만 한번쯤 사랑 이야기로 제 음반을 채우고 싶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노래하는 건 음악의 역할에 공감과 위로가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사랑 노래는 정말 쓰기 어려워요.

김장훈 씨의 '나와 같다면'처럼 좋은 노래들이 많으니까요.

저라는 필터를 거친 사랑 노래가 어떻게 나올지 저 역시 궁금했어요.

"
이적이 반추한 사랑의 정서는 전반적으로 쓸쓸하고 관조적이다.

그는 "이제 결혼했으니 더 이상 새로운 사랑을 할 수 없는 슬픔과 허전함이 담겼나보다.

앗, 이 말하면 처가에서 전화오겠다"며 웃고선 "이 음반을 작업하며 내가 겪어온 지난 사랑의 과정들을 곱씹어봤다.

여기에 내가 품은 음악 정서인 슬픔이 녹여졌다"고 말했다.

멋있게 보이려는 꼼수 대신 마음에서 우러나온 작업이었기에 수록곡들은 물 흘러가듯 자연스러운 옷을 입었다고 한다.

그는 "이 음반은 지금의 나와 닮았다"며 "15년 활동한 만큼 자연스럽게 번져나오는 나의 음악 내공을 담고 싶었다.

지금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빨래' '두통' '보조개' 등 수록곡 제목들은 사랑의 저릿한 여운을 품은 상징적인 소재들이다.

덕택에 사랑과 이별이 흘린 부스러기 감정들은 단정하게 자리잡았다.

연인과 헤어진 후 뭐라도 해야할 것 같아 빨래를 하고 지난 사랑의 기억은 두통만큼 자주 찾아오며 보조개가 있는 사람을 볼 때마다 네가 생각난다는 노랫말은 정감어리다.

"'빨래'는 후배가수 루시드폴과 전화하다가 '뭐하냐"고 물었더니 '빨래나 하려고요'라고 답하길래 제가 그 말을 쓰겠다고 했죠. '보조개'는 제가 보조개가 있는데 누군가 제 보조개를 추억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붙였어요.

"

그러나 순박한 노랫말을 품은 멜로디와 사운드는 다채롭고 드라마틱하다.

그간 여러 그룹을 통해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보여준 그의 역량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타이틀곡 '그대랑'과 '두통'에서 역동적인 록 넘버로 달리다가도, '보조개'에서는 사랑스러운 멜로디로 얼굴을 바꾼다.

'다툼' '빨래' '매듭'은 발라드의 정석에 충실했다.

여기에 담긴 그의 음색은 타고난 보컬은 아니지만 한층 단단해졌고 감정 표현에 완숙해졌다.

"데뷔 시절에는 스스로 싱어라고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노래를 못했어요.

하지만 여러 경험이 쌓이고 고민을 하면서 표현의 폭이 넓어졌죠. 나이에 비해 어린 목소리가 나온다는 장점은 있지만 여전히 가창의 아쉬움은 있어요.

아마 '슈퍼스타 K'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갔으면 떨어졌을 거예요.

하하."
이번 음반이 나오기까지는 3년여가 걸렸다.

최근 트위터에 70편가량 써내려간 단문 소설도 음반 준비때문에 중단했다.

요즘처럼 발빠르게 돌아가는 가요계 사이클로 보면 호기로울 정도다.

"오랜 시간 작업해도 제 음악이 유행을 타지 않아 다행이에요.

창작 과정에서 스트레스는 받지만 남들보다 정신적인 여유를 가질 수 있단 점도 감사하고요.

요즘 루시드폴이 제게 자극을 주는데 그의 음악은 소박하지만 진정성이 있죠. 저도 제 음악을 올곧게 파보려고요.

"
그러나 음악은 파고들수록 명확한 해답을 찾기란 쉽지 않은 법.
그는 "4집을 완성하고도 여전히 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겠다"며 "결국 사랑에 얽힌 여러 마음을 담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그는 요즘 새로운 사랑을 배워가는 재미에 빠져있다.

"5개월 된 딸이 저와 무척 닮았어요. 하루하루 발육이 달라지는 게 신기하죠. 딸이 저와 눈을 마주칠 때면 마치 모든 걸 아는 사람 같은 눈빛이죠. 아이가 어떤 생각을 하는 지 너무 궁금해요."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mim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