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박물관이 당당하게 마케팅의 세계로 진입하고 있다. 메이저 자동차 회사들은 박물관을 대대적으로 건립,지역 내 명소로 키우는가 하면 박물관을 통한 신차 마케팅에도 열심이다.

박물관 마케팅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독일 업체들이다. 내연기관 100여 년의 긴 역사를 드러내 브랜드 전통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자동차 업체들 간 성능과 품질 차이가 좁혀지면서 브랜드 차별화에 어려움을 겪게 된 독일 업체들이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을 겨냥해 '박물관 마케팅'이란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쏟아지는 신차에 혼란스러워하는 소비자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고,동시에 브랜드 이미지가 재조명되도록 하는 다목적 포석이다.

박물관 마케팅의 결과는 성공적이다. 각종 기념품을 사기 위해 해외에서 자동차 박물관에 몰려들 정도다. 박물관이 지역 내 명소로 발돋움,관광 안내서에 '가볼만 한 곳'으로 등재돼 있기도 하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이런 점을 적극 활용해 프랑크푸르트 모터쇼가 열릴 때마다 최초 자동차로 알려진 벤츠 1호차의 복제품을 만들어 전시장에 비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동차 박물관으로 가장 많은 관람객을 모으는 곳은 미국의 포드 박물관이다. 미국 자동차의 발상지인 미시간주 디어본에 자리잡은 포드 박물관은 관람객이 연 160만명에 달할 정도로 미국인에게 친숙한 곳이다.

포드 박물관의 설립 아이디어는 '에디슨'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 지 50주년이 되던 1929년,포드의 창업자인 헨리 포드가 에디슨의 개척 정신을 계승하려는 목적으로 공장 인근에 에디슨 학교를 세운 게 시작이다.

1947년 포드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에드슨 학교는 헨리 포드 박물관으로 변모했다.

프리미엄 브랜드가 즐비한 독일에선 슈투트가르트가 자동차 박물관의 메카로 꼽힌다. 과거 말 사육으로 유명했던 슈투트가르트에는 벤츠와 포르쉐 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벤츠 박물관은 자동차의 역사뿐 아니라 미래 기술도 함께 전시하고 있어 모두 둘러보는 데 꼬박 하루가 걸린다. 폭스바겐 본사로 유명한 볼프스부르크도 자동차 박물관으로는 놓치기 아쉬운 명소다.

런던에서 남서쪽으로 150㎞가량 떨어진 영국 국립 자동차 박물관은 1952년 한 영국 귀족에 의해 시작됐다. 갈수록 소장품이 늘면서 1972년 국립 자동차 박물관으로 자리잡았다. 박물관이 위치한 장소 자체가 역사 유적지여서 교육장으로도 많이 활용되고 있다. 이 곳의 자동차 소품과 동영상은 영화 007 시리즈에도 자주 등장한다.

가까운 일본도 자동차 박물관이 즐비하다. 1989년 개관한 도요타 박물관은 도요타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자동차를 소장한 종합 자동차 박물관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일본 자동차의 과거와 현재,그리고 미래를 동시에 보여준다는 점에서 자동차 마니아들의 호응이 높다.

영국을 제외한 유명 자동차 박물관의 공통점은 모두 자동차 회사가 직접 설립,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동차를 운송 수단에서 벗어나 문화적 산물로 여기는 시각을 반영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한국에서 자동차는 여전히 '움직이는 수단'일 뿐 문화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아쉽다. 전 세계에서 자동차 박물관을 보험회사가 소유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할 것이다.

권용주 오토타임즈 기자 soo4195@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