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최종 카드로 남겨두고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 의제 상정과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로 우선 압박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는 국제사회에서 우군을 모아 중국의 위안화 절상을 촉구키로 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중국의 전기강판 관세 부과와 카드결제 개방 지연을 이유로 내세워 이미 WTO에 제소했다. 중국은 하지만 미국의 이런 강공이 부당하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면서 나름대로 미국에 대한 역공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 "일단 11월 G20 회의에서 보자"

티모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은 16일(현지시간) 미 상원과 하원 청문회에 출석,오는 11월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아군을 다시 모으겠다고 밝혔다.

그는 "시간을 두고 중국을 상대로 외교적 노력을 강화하고 G20 서울 정상회의를 활용해 중국이 위안화 환율시스템을 개혁하도록 지지를 모아나갈 것"이라고 답변했다.

미 의회 내에서도 비슷한 주장들이 있다. 당장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을 방침이라면 미국의 '단독 플레이'보다는 '다자 플레이'로 중국을 옥죄는 전략이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찰스 그래슬리 공화당 상원의원은 "행정부가 지금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중국을 불공정한 환율조작국으로 WTO에 제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소속의 샌더 레빈 하원 세입위원장도 "환율 조작 문제는 다국적인 접근이 가장 광범위한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이를 위해서는 영향력이 부족한 국제통화기금(IMF)보다 G20이 그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촉구했다.

물론 다음 달에라도 곧바로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강경파도 있다. 척 슈머 민주당 의원은 "중국이 보유 중인 미 국채를 대거 매각하거나 중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을 규제하는 것이 겁나기 때문에 지정하지 않는가"라고 가이트너 장관에게 따져 물었다. 금융위원장인 크리스토퍼 도드 의원은 "미국이 점차 약해지는 동안 중국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모두 다하고 있으며 더욱 강해지고 있다"며 "이제 우리가 구체적인 행동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행정부를 몰아세웠다.

미 학계에서는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가 "중국이 국채를 팔면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다 받아주면 된다"며 "이에 따라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 미국의 무역수지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 미국산 제품에 보복 조치할 수도

중국은 17일 기준환율을 달러당 6.71위안으로 고시했다. 최근 6일 동안 1.31%나 오른 것이다. 미국의 위안화 절상 압력을 의식해 의도적으로 위안화 가치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중국이 나름대로 성의있는 행동을 보이고 있는데도 미국이 WTO에 중국을 제소하자 크게 반발하는 모습이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미국은 위안화 절상에 이어 통상부문에서도 대중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며 "미국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국내 정치 때문에 중국을 희생양으로 만들려는 조치"라고 비난했다. 훠젠궈 중국 상무부 국제무역경제합작연구원장은 "미 · 중 간에 무역전쟁을 피하려면 미국은 보복조치를 해서는 안 된다"며 "특히 미국이 이런 강압적인 자세를 지속할 경우 중국도 미국산 제품에 같은 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은 특히 미국이 위안화 문제 제기에 앞서 달러가치 안정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인민은행은 17일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달러가치 안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의 러우지웨이 회장도 미국이 초저금리 기조를 고수할 경우 중국이 보유한 외환에서 달러자산을 더 처분해야 할 것이라고 가세했다. 그러나 미국의 전방위 압박에 대해 중국 측이 실제로 어떤 카드를 꺼낼 것인지는 미지수다. 올초와 같이 반덤핑관세로 맞받아칠 가능성도 있지만 위안화 절상을 염두에 둔다면 쉽사리 실행에 옮기기는 어려워 보인다.

양평섭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베이징사무소장은 "중국이 미국과 전면전을 펼치기에는 아직 부담이 크다"며 "미국의 중간선거 때까지 중국은 어느 정도 성의를 보이며 타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에 대규모 구매사절단을 보내기로 한 것도 타협용이라고 분석했다. 베이징의 한 전문가는 "미국 역시 경착륙을 걱정하고 있는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급격하게 올리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며 "중간선거를 의식하고 무역분쟁이 무역적자 해소에 더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위안화에서 통상문제로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워싱턴=김홍열/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