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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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아빠의 자녀교육법'(로버트 기요사키,샤론 레흐트 · 2001)의 공동저자인 레흐트는 책의 집필 동기에 대해 '대학생 아들이 카드빚에 휘청거리는 걸 보고 충격 받아서'라고 털어놨다. 미국에서 신용카드 연체로 궁지에 몰린 대학생의 자살 보도가 잇따르던 시절이었다.
간접경험은 소용없는 걸까. 이런 경고에도 불구, 국내에선 소비를 늘린다며 신용카드를 마구 발급하더니 급기야 2004년 카드 대란을 몰고 왔다. 신용불량자 360만명.카드빚을 갚으려 사채를 얻었다 죽음으로 내몰렸다는 얘기와 함께 형사사건 50%가 카드빚 탓이란 말까지 나왔다.
신용카드는 잘만 활용하면 미다스의 손이나 다름없다. 불편과 위험을 감수하면서 현금을 갖고 다니지 않아도 될 뿐만 아니라 당장 돈이 없어도 물건을 사거나 병원비 등 각종 비용 결제가 가능하다. 현금서비스는 급전이 필요할 때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구차함을 덜어준다.
그러나 외상이면 소도 잡는다고 현찰이 없어도 되는데다 할부도 가능하니 무조건 긁곤 뒷감당을 하기 어려운 수가 적지 않다. 빚이란 이렇게 자신의 처지나 뒷일을 잊게 만드는 마약 같은 것이다.
주택담보대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자고 새면 집값이 오르던 시절 은행 대출은 할 수만 있으면 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빚 지는 게 무서워 아파트, 특히 서울 강남아파트를 사지 못한 사람은 졸지에 무능의 대명사로 분류됐을 정도다.
저축은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나 하는 멍청한 짓이고,어떻게든 대출 받아 집을 장만한 사람은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이 됐다. 그러나 미국발 금융 위기로 경기가 꺾이면서 집값이 오르기는커녕 떨어지자 여기저기서 집만 있는 가난뱅이(하우스 푸어)가 됐다며 난리가 났다.
결국 한시적으로나마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완화,다시 빚을 더 얻어 쓰도록 해준다고 한다. 살던 집이 안팔려 이사 가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건설경기를 살려 일자리를 늘리자고 마련된 방안이다. 고육지책인 셈인데 서민의 빚만 늘릴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결과는 예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빚을 지고 안 지고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몫이다. 집값이 오르지 않으면 빚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는 정도를 넘어 풍선처럼 부푼다. 이자율 또한 올라간다고 예고돼 있다. '빚진 종'이란 말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간접경험은 소용없는 걸까. 이런 경고에도 불구, 국내에선 소비를 늘린다며 신용카드를 마구 발급하더니 급기야 2004년 카드 대란을 몰고 왔다. 신용불량자 360만명.카드빚을 갚으려 사채를 얻었다 죽음으로 내몰렸다는 얘기와 함께 형사사건 50%가 카드빚 탓이란 말까지 나왔다.
신용카드는 잘만 활용하면 미다스의 손이나 다름없다. 불편과 위험을 감수하면서 현금을 갖고 다니지 않아도 될 뿐만 아니라 당장 돈이 없어도 물건을 사거나 병원비 등 각종 비용 결제가 가능하다. 현금서비스는 급전이 필요할 때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구차함을 덜어준다.
그러나 외상이면 소도 잡는다고 현찰이 없어도 되는데다 할부도 가능하니 무조건 긁곤 뒷감당을 하기 어려운 수가 적지 않다. 빚이란 이렇게 자신의 처지나 뒷일을 잊게 만드는 마약 같은 것이다.
주택담보대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자고 새면 집값이 오르던 시절 은행 대출은 할 수만 있으면 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빚 지는 게 무서워 아파트, 특히 서울 강남아파트를 사지 못한 사람은 졸지에 무능의 대명사로 분류됐을 정도다.
저축은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나 하는 멍청한 짓이고,어떻게든 대출 받아 집을 장만한 사람은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이 됐다. 그러나 미국발 금융 위기로 경기가 꺾이면서 집값이 오르기는커녕 떨어지자 여기저기서 집만 있는 가난뱅이(하우스 푸어)가 됐다며 난리가 났다.
결국 한시적으로나마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완화,다시 빚을 더 얻어 쓰도록 해준다고 한다. 살던 집이 안팔려 이사 가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건설경기를 살려 일자리를 늘리자고 마련된 방안이다. 고육지책인 셈인데 서민의 빚만 늘릴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결과는 예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빚을 지고 안 지고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몫이다. 집값이 오르지 않으면 빚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는 정도를 넘어 풍선처럼 부푼다. 이자율 또한 올라간다고 예고돼 있다. '빚진 종'이란 말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