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새벽 중국을 방문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향후 동선을 놓고 여러 갈래의 추정이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의 전용열차가 멈춘 지린성 지린시는 삼엄한 경비가 펼쳐진 가운데 시내 우쑹빈관이 폐쇄됐다.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이 김 위원장을 맞았다. 쑹화강변에 있는 우쑹빈관 관계자는 "주말까지 손님을 받지 않는다"고 밝혀 김 위원장의 체류기간이 적어도 3~4일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베이징 외교가 일각에선 김 위원장이 지린시에 계속 머물거나 적어도 북한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동북 3성(지린성 랴오닝성 헤이룽장성)을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베이징의 한 북한 전문가는 "지난 5월 방중 때 일정 소화에 차질을 빚을 만큼 좋지 않은 건강 상태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평양에 머물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베이징까지의 장거리 여행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지린에서 베이징으로 가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랴오닝성 선양시에 경비 강화 조짐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이 지린시 등 동북 3성에 계속 머문다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또는 원자바오 총리가 베이징에서 이동해 김 위원장과 전격 면담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매우 파격적인 시나리오로 그만큼 뭔가 긴박한 일이 양국 간에 존재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전문가는 "김 위원장이 3개월 만에 전격적으로 중국을 방문했다면 천안함 사태 이후 급박해진 정세와 경제난,수해 등으로 중국 측과 긴급하게 협의해야 할 뭔가가 있을 것이고 이런 점에서 보면 파격적인 정상회담 역시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중국의 입장에서도 전략적 가치가 높아진 북한을 확실히 장악하는 게 급선무이기 때문에 형식에 구애받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김일성 주석이 1927년부터 1930년까지 다닌 지린시의 위원(毓文)중학교와 항일유적지인 베이산공원을 방문했다. 위원중학교는 김 주석이 공산주의 사상을 습득한 곳으로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항일투쟁지와 더불어 김 주석의 모교를 방문한 것은 중국과의 세대를 이은 혈맹관계를 확인시키는 동시에 북한 내부적으로 김정은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것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하는 노림수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베이산공원은 항일전쟁 당시 전사한 혁명열사기념탑과 기념관,묘역으로 조성돼 있다.

김 위원장의 전용열차가 이날 압록강을 건넌 길은 만포~지안 간 철도다. 이 열차는 지린성 지안에서 퉁화를 거쳐 지린시로 진입했다. 김위원장이 그동안 5차례 최고통치자로서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신의주~단둥 노선을 선택했지만 만포~지안 루트를 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만포와 지안을 잇는 철로는 주로 러시아의 목재 등을 실어나르는 통로로 사용되고 있다. 열차가 만포~지안선을 택한 것은 굳이 베이징을 방문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김 위원장의 건강 상태를 고려할 때 베이징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이 노선을 잡았다는 것은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단둥에 폭우가 쏟아져 홍수 피해가 크다는 점에서 철도의 안전성 때문에 우회로를 택한 것 아니냐는 추정도 있다. 이 경우 지린~장춘~선양~베이징으로 통하는 길을 열차가 달리게 된다. 그러나 지안과 퉁화 지역에도 많은 비가 내린 만큼 안전성 문제로 이 노선을 택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