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5~8호선에 투입되는 전동차를 누가 제작하느냐를 놓고 벌어진 논쟁이 넉 달 만에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현대로템이 제작해온 전동차를 노선운영공사인 서울도시철도공사도 제작할 수 있도록 한 '도시철도공사 설립 · 운영 조례 21조'를 삭제하는 개정안이 최근 의회 다수인 민주당 주도로 발의됐기 때문이다.

23일 서울시의회에 따르면 김형식 의원(민주당) 등 시의원 43명은 도시철도공사의 전동차 조립 · 제작을 금지하는 조례 개정안을 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지난 4월 한나라당이 다수일 때 마련된 '도시철도공사의 전동차 조립 · 제작 허용 조항'이 '민주당 의회'에서 백지화되는 셈이다. 왜 전동차 제작 문제가 오락가락하는 것일까.
◆"안전에 문제가 있다" vs "문제없다"

개정안을 발의한 시의원들은 "도시철도공사가 전동차를 조립 · 제작하면 전동차 자체의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지하철 운영업체가 제작까지 한다면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유다. 시의원들은 "다른 철도운영기관을 아우르는 별도법인 신설 등 종합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도시철도공사의 자체 제작을 반대하고 있다. 지난 4월 시의회에서 투표를 거쳐 통과된 허용안이 4개월 만에 백지화 대상이 된 셈이다.

하지만 도시철도공사는 전동차를 자체 제작해도 지하철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공사 관계자는 "4년에 한 번꼴로 전동차를 완전 분해 · 조립하는 과정을 15년 넘게 반복했다"며 "차체나 제동 · 제어시스템 등을 공사가 직접 생산하지 않고 국내 전문업체들의 부품을 구입해 완성차로 조립하는 것이어서 문제될 게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의원들이 어떤 기준으로 자체 제작 전동차의 안전성을 문제 삼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하면 기술적 해소능력을 보여주고 외국 전문기관의 검증까지 받을 용의가 있다"고 제안했다.

◆과당경쟁 논란 vs 비용 절감

도시철도공사라는 공기업이 민간의 전동차 제작시장을 침범해 출혈경쟁을 조장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도 불거질 전망이다.

국내 유일의 전동차 제작업체인 현대로템은 그동안 도시철도공사에 전동차 제작을 허용하면 국제 경쟁력이 약화된다며 반대해왔다. 현대로템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정부의 산업구조 합리화 정책으로 한진중공업,대우중공업(현 두산인프라코어),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의 철도차량 부문을 통합해 출범한 회사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외환위기 당시 철도3사 '빅딜'은 중복 · 과잉 투자에 따른 경쟁력 저하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였다"며 "최근 10년간 국내 전동차 시장규모가 연평균 2600억원에 불과한 마당에 덤핑경쟁이 벌어진다면 외환위기 때의 악몽이 재연될 수밖에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프랑스나 독일,캐나다 등에서도 전동차 제작을 1개 기업에 맡겨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도시철도공사는 국내 전동차 시장에 경쟁시스템이 도입되면 제작 비용을 크게 낮춰 지하철 운영부채를 줄일 수 있다는 논리로 맞서고 있다. 도시철도공사 관계자는 "2000년까지만 해도 한 량에 5억원 정도 하던 전동차 구입비용이 최근 16억원 이상으로 치솟았다"며 "전동차를 자체 제작하면 한 량에 9억23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지난 6월 말 지하철 7호선 연장구간(온수~부천~부평구청)에 투입할 전동차 56량(자체 제작)을 517억원에 계약해 당초 예산보다 155억원(23%) 절감했다는 게 공사 측 주장이다.

한나라당이 다수였던 시의회는 비용 절감에 찬성한 반면 민주당이 다수인 현재 시의회가 반대하는 이상한 현상이 전동차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강황식 기자 his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