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 열거한 사람들 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갑자기 끼어드는 차량의 운전자,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 상품을 권유하는 텔레마케터,한밤중에도 쿵쿵대는 아이들을 방치하는 윗집의 부모,인도를 질주하는 오토바이 운전자,아이를 동반한 가족이 식사하는 주변에서 줄담배를 피우거나 만취해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일군의 남자분들.

아마도 많은 분들에게 '불쾌함'이란 단어일 것이다. 더구나 불볕더위로 불쾌지수가 높은 요즘엔 종종 원치 않는 시비로 번지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보통의 선한 사람들은 잠시만 참으면 그뿐이니 시비 붙지 말자고 다짐하며 인내한다. 한편으로는 '얼마나 급했으면 그랬을까,나도 그 상황에서 그렇게 하지 않을까'라며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심정으로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불쾌감을 스스로 달래며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는 분도 많은 듯하다.

문제는 불쾌감이나 피해를 당하는 분들은 역지사지하는 반면,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은 변함없이 방약무인(傍若無人)한다는 점이다. 역지사지하는 이유도 방약무인하는 사람들이 사회의 극소수가 아니라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다수이기 때문에 그들과 일일이 시비 붙기보다는 그냥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참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라 자위하며 체념하기 때문인 듯하다.

싱가포르 홍콩 일본 등은 법과 질서를 기반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철저히 통제하며 남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는 의식이 사회 전체적으로 정착돼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뭐 그런 것까지 굳이 법과 공권력으로 막아야 하냐는 의식이 존재하는 듯하다. 세상을 살아가며 자연스럽게 드는 이기심으로 쉽게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역지사지의 자세지만,방약무인하는 사람들이 좀더 많이 역지사지하는 자세를 가질수록 우리 사회가 처한 상당수 문제들이 쉽게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늘 협상과 교섭을 훌륭하게 이끄는 필자의 지인은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성공비결을 들려준 바 있다. "난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이 아니라 역지사지면 상호만족의 자세로 협상에 임한다. "

어차피 정해진 답도 없고,서로 공존하며 살아야 하는 사회에서 필자의 눈에는 일상의 순간순간이 협상이다. 가장 좋은 협상은 서로 일정 수준의 양보를 통해 윈-윈하며 어느 한쪽이 일방적인 이득을 보지 않는 것이다. 일방적 손해를 본 상대방은 다시는 당신을 협상 파트너로 선택하지 않는다. 내가 역지사지해야 상대방도 역지사지할 수 있을 것이고,이로 인한 득이 실보다 훨씬 클 것은 자명하다. 연중 높은 습도와 온도로 자연적 불쾌지수가 높을 수밖에 없는 홍콩과 싱가포르에 비해,자연이 선물한 쾌적한 사계절 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높은 마음의 불쾌지수를 느끼고 있는 듯한 우리 사회가 씁쓸하다.

박형철 < 머서코리아 대표 Andy.park@merc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