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 두려워서 도피"…도피생활 심경 토로

뇌물수수 혐의로 수사를 받아온 오현섭(60) 전 여수시장이 인구 30만여명의 지역 기관장을 지낸 사람답지 않게 무려 두 달간이나 도피 생활을 한 이유에 궁금증이 모인다.

도망을 다니면서 시간을 번다고 혐의가 없어지는 게 아니고, 아무리 수사를 받고 있더라도 퇴임을 앞둔 현직 시장이 퇴임식에도 나타나지 않은 채 잠적을 이어간 행각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자신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된 6월18일부터 잠적한 오 전 시장은 도피 60일째인 18일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자진 출석했다.

장기간의 도피생활이 힘들었는지 초췌한 얼굴이었으며, 검은색 바지에 회색 티셔츠와 재킷을 입었고 신발은 하얀색 운동화를 신었다.

오 전 시장은 도피 직후부터 광주에서 지인 이모(57)씨의 도움을 받아 숨어지내다 전남 화순 산속의 김모(59)씨 집으로 옮겨 보름간 은신했다.

물론 이씨와 김씨는 범인도피 혐의로 구속 등으로 사법처리됐다.

이후 오 전 시장의 행방은 묘연해졌다.

지난달 9일 강원도 강릉터미널에서 버스표를 사는 모습이 CCTV에 잡혔고, 경찰은 목적지의 CCTV를 뒤졌지만 버스에서 내리는 모습은 잡히지 않았다.

휴대전화, 신용카드, 인터넷 등 위치가 추적될만한 도구는 전혀 사용하지 않으며 경찰의 추적을 따돌려온 오 전 시장은 결국 자수 이틀 전인 16일 경찰에 편지를 보내 이날 자진 출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A4용지 8장 분량으로 장문의 자필 편지에는 자수 의사와 일시뿐 아니라 도피 생활을 하면서 느낀 심정과 도피 이유 등이 자세히 적혀 있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에 따르면 자신을 추적하는 경찰청 특수수사과 3팀장과 팀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오 전 시장은 "정말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라고 했으며, "판단 잘못으로 오욕과 멍에를 지게 됐다"고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또 자신이 광주시 기획관리실장으로 재직하던 1998년 주식 정보를 입수해 2억5천만원의 시세차익을 거둔 혐의로 구속되던 당시를 떠올리며 "그때 광주 시장이 보는 앞에서 체포된 적이 있다.

소름이 끼쳤고 무서웠다.

체포영장이 발부됐다는 소식을 듣고 잠적을 결심했다"고 적었다.

이밖에 오 전 시장은 "도피자의 참담하고 암담한 심정을 느꼈다"며 도피 생활의 괴로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예전에 구속된 적이 있어서 장기간 도피를 하게 된 것 같다.

편지의 소인을 보면 경기도 고양시에서 발송한 것으로 돼 있지만 자신이 직접 보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자세한 도피 경로는 조사를 해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박성민 기자 min76@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