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기부양 경쟁] 美 디플레ㆍ더블딥 공포 확산…FRB, 추가 양적완화 고민
미국경제가 '디플레이션(물가 하락)'과 '더블딥' 우려가 커지면서 위기를 막을 수 있는 정책대응 방안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린다. 특히 대규모 누적적자 탓에 재정 정책에서 여유가 없어진 가운데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양적완화 조치만으로 또다른 위기를 막을 수 있을지가 핵심 사안이다.

17일 월가 금융계에 따르면 최근 발표된 각종 경제 통계에서 미국의 경제 회복 동력이 급속히 약화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FRB가 국채 매입만으로 근본적인 문제를 풀기는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시중 유동성이 풍부한 데다 금리 수준이 낮은 터여서 통화정책만으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어렵다는 것이다.

◆커지는 더블딥 리스크

고용시장 회복이 지연되고 소비자들이 지갑을 다시 닫으면서 디플레이션과 더블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7월 소매 판매는 전달에 비해 0.1% 감소했고 16일 발표된 전미주택건설업협회(NAHB)의 8월 주택시장지수도 전월 대비 1포인트 하락한 13을 기록했다.

미 노동부가 발표한 7월 실업률은 9.5%이지만 구직을 포기한 111만5000명 등을 포함하면 실업률도 10.4%로 높아진다. 6개월 이상 장기실업자는 675만명에 달한다. 이와 달리 미국의 7월 생산자물가지수(PPI)는 넉 달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고 산업생산도 전달보다 1% 증가하며 시장 예상치(0.5%)보다 두 배 가까운 상승세를 보였다고 FRB가 17일 발표했으나 경기의 큰 흐름을 판단하기에는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FRB 한계론 급부상

전후 최악의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버냉키 의장은 과감한 통화정책을 통해 소방수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미묘한 분위기 변화가 감지된다. 칼 월시 캘리포니아대 경제학 교수는 최근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미국 경제 성장이 약해질수록 FRB의 정책 선택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유통 시장에서 미 국채 등 장기 자산을 추가로 매입하는 방식으로 경기 활성화 효과를 거둘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특히 FRB의 대규모 국채 매입은 '정부 부채의 화폐화(monetization)'라는 비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윌리엄 풀리 전 센이트루이스 연방은행 총재도 만기가 돌아오는 모기지 증권 자금으로 미 국채를 매입하기로 한 결정을 두고 "근본적으로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경제 회복에 도움이 될지 확신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학계 일부에서는 FRB가 지난 3월 시장에서 미 국채와 모기지 증권 등 장기채 투자를 마무리한 뒤 경제 회복 동력이 급속히 떨어진 것으로 본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FRB가 디플레이션 우려를 방지하기 위해선 인플레이션 목표를 3%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책당국 "달러강세는 일시적"

최근 미 달러화는 세계경기 둔화 우려를 반영한 안전자산 선호현상으로 오름세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미 정책당국은 달러 강세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통화당국이 경제활성화를 위해 상당 기간 제로수준의 저금리 정책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무역적자 증가 등 달러 가치 하락 압력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도 경제 불확실성이 걷히면 미 달러가치는 중장기적으로 약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


더블딥
'두 번(double) 떨어진다(dip)'는 뜻으로 경기침체 후 잠시 회복기를 보이다가 다시 침체에 빠지는 현상.두 번의 경기침체를 겪는다는 점에서 'W자형 침체'로도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