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국가별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미국 중국 일본 순으로 중국이 일본을 추월했다. 최근 들어 이들 G3(미 · 중 · 일) 국가 간에는 '총성 없는 환율전쟁'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그 발단은 미국에서 비롯됐다. 미국은 지난주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그때까지 추진했던 소극적 의미의 출구전략을 포기하고 비상 대책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양적완화 정책으로 환원했다. 앞으로는 주택담보부증권(MBS) 상환으로 들어오는 자금을 활용,국채를 매입해 유동성을 다시 공급해 나가겠다는 것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의도다.

외형상으로는 공개시장 조작 대상이 MBS에서 국채로 바뀐 점을 제외하고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떤 국채를 매입하느냐에 따라 오는 11월 예정된 미국의 중간선거(상 · 하원 의원선거)를 겨냥해 버락 오바마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신경기부양책의 성패와 환율 움직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어떤 국채를 매입하든 단기적으로는 경기부양 효과가 기대된다. 일부에서는 이번 FOMC 회의에서 출구전략이 퇴조된 것을 계기로 1930년대와 같은 대공황을 우려하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경제지표가 악화될 조짐을 보이자마자 바로 비상 대책으로 환원,유연하게 대처한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정책 실패에 따른 비판을 의식해 경직적으로 대처했던 1930년대보다 낫기 때문이다.

또 만기가 긴 국채를 매입한다면 오바마 정부가 미국 경제구조 개편과 국제 위상을 되찾기 위해 추진 중인 신성장동력 산업의 육성을 뒷받침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대부분 회임 기간이 긴 성장산업의 특성을 감안할 때 장기채 매입으로 금리가 낮아지면 투자를 촉진시키는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 주목되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최근 각국 간 통화가치는 금리 차에 의해 좌우되는 정도가 가장 크다. 이런 상황에서 국채 매입으로 미국의 시장금리가 낮아지면 달러 약세를 촉진시킬 가능성이 높다. 8월 FOMC 회의 이후 국제외환 시장에서 모든 통화에 대해 달러 약세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달러 약세라는 환경을 인위적인 시장 개입을 통해 유도하지 않고 국채 매입을 통해 순조롭게 이뤄내는 셈이다. 오바마 정부가 아시아 국가를 대상으로 추진하고 있는 수출진흥책과 맞물려 벌써부터 국제외환 시장에서 '총성 없는 환율전쟁'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나라의 통화가치가 경쟁국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는 적정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특정국이 수출 진작을 이유로 통화가치를 인위적으로 평가절하할 경우 그 피해가 고스란히 경쟁국에 전가되는 '근린궁핍화 정책'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때 경쟁국도 피해를 막기 위해 통화를 경쟁적으로 평가절하하면 환율전쟁이 발발한다.

이런 의심을 갖게 하는 것이 중국 외환당국의 태도다. 올 6월 말 이후 채택한 복수통화바스켓 제도하에서 달러 비중이 종전보다 줄기는 했지만 달러 약세가 진행되는 중에도 최근 위안화 환율은 8월 FOMC 회의 전보다 높게 고시됐다. 달러 약세에서는 위안화가 절상돼야 하는데도 오히려 절하되고 있는 셈이다.

반면 일본은 고스란히 엔고를 수용하고 있다.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하지만 8월 FOMC 회의 이후 엔화 가치는 초강세를 보이며 달러당 84엔을 기록했다. 일부에서는 1995년 4월 기록한 달러당 79엔대가 깨지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제시돼 엔화 향방이 더 주목되는 상황이다.

통화와 재정정책 면에서 경기부양 수단이 거의 없는 일본의 간 나오토 정부는 엔고로 우려되는 디플레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엔화 약세를 간절히 바라지만 아직 시장 개입에 나서지 않고 있다. 섣불리 개입했다가 오바마 정부의 수출진흥책과 맞물려 환율 마찰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 더 많은 피해를 입을까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가. '최소자승법'을 통해 위안화와 엔화가 원화에 미치는 영향력을 계산해 보면 2000년대 이후 각각 0.49(위안화), 0.02(엔화)로 나온다. 폭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최근처럼 위안화 약세와 엔화 강세가 겹치면 원화에 미치는 효과는 서로 상쇄되지만 위안화 영향이 더욱 커 원화 약세가 예상된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이 위안화와 엔화 약세로 적극 대처할 경우 원화약세 폭은 커지고 반대의 경우는 원화강세 폭이 의외로 커질 가능성이 높다.

환율 움직임이 국내 경기와 증시의 최대 변수가 될 것으로 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우리처럼 '윔블던 현상'(외국인에 의해 가격변수 등 금융시장 움직임이 좌우되는 것)이 심한 국가에서는 환율이 항상 중요한 변수지만 특히 올여름 휴가철 이후에는 환율 움직임에 주목해야 한다.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