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크와 기병대가 투입됐다. 군인들은 소총에 대검을 꽂고 실탄을 장전한 채 백악관 주변에 몰린 실업자 수천명을 해산시켰다. 미국인들은 1932년 그때를 잊은 것 같다. "

지난달 초 앤디 그로브 전 인텔 회장이 대공황 당시 발생한 실업사태의 극한 장면을 섬뜩하게 상기시켰다. 그는 제조업이 살아야 미국의 일자리 시장이 살아난다고 비즈니스위크지에 기고하면서 고용없는 경제 회복을 개탄했다. 애플이 세계적인 히트제품을 내놔봤자 일자리는 중국인들이 다 챙긴다고 지적했다. 그로브는 아시아 신흥국들처럼 미국 정부가 효율적으로 개입해 산업정책을 새로 짜야 하고 보호무역까지 마다해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달 중순 미시간주 홀랜드에서 열린 LG화학 전기차배터리 공장 기공식에 참석했다. 완공 후 400명을 고용할 외국 기업의 행사에 미국 대통령이 온 것은 의외였다. 그는 축사를 통해 "미국산(Made in America) 배터리"라고 두 번이나 강조했다. 미국 땅에서 일자리를 만들어주면 어느 외국기업 행사라도 달려가겠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직면한 실업 공포와 절박감은 미 제조업이 처한 위기와 맞닿는다. 미국제조업동맹(AAM)에 따르면 미 제조업은 세계 9위 규모로 추락했다. 국내총생산(GDP) 비중이 12%에 1200만명을 고용하고 있을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2000년 이후에는 제조업 공장 5만개가 문을 닫았고 일자리도 550만개 줄었다. 2002~2007년 미 경제는 17% 성장했지만 제조업은 5% 성장하는 데 불과했다.

오바마는 2009년 취임하자마자 8620억달러에 이르는 사상 최대 경기부양 자금을 투입했다. 실업률을 8%대로 묶겠다고 자신했지만 약속 위반이 돼 버렸다. 미 노동부가 발표한 지난 7월 실업률은 9.5%였다. 금융위기 이전 실업률인 4%대보다 여전히 높다. 월가 금융업에 휘둘려온 미 경제가 제조업에 복수를 당하고 있는 셈이다.

역시 지난달 중순 스콧 폴 AAM 이사가 하원 청문회에 출석해 발언한 내용은 의미심장했다.

그는 미 제조업의 쇠락과 이에 따른 실업 고통의 근본원인이 산업전략 부재에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지난 10년 동안 미 제조업이 하락길을 걸을 때 독일 제조업의 세계시장 점유율과 수출 점유율은 고스란히 유지됐다"고 부러워했다. 독일은 미국처럼 노동비용이 낮지 않은 국가이지만 정부의 지원,노사협력,공격적인 무역정책으로 제조업 경쟁력이 유지되면서 고용 창출을 주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11월 중간선거를 의식한 측면이 없지 않으나 미 의회는 발빠른 조치에 나섰다. 미국에서 공장을 짓고 일자리를 만드는 자국 기업에 혜택을 주는 'Make it in America' 입법이다. 하원은 지난 7월21일 '미국 제조업 전략 법안','클린에너지 기술 제조 및 수출지원 법안' 등을 통과시켰다. 제조업 전략 법안은 대통령이 4년에 걸쳐 관련 정책을 내놓도록 했다. 상원은 8월 휴회가 끝나면 이들 법안의 처리 여부를 결정한다.

그로브 전 회장과 오바마 대통령의 상황 인식,의회의 맞장구는 제조업을 반드시 강화하겠다는 미국식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의 절정이다. 주요 밥줄인 조선 철강 자동차 전자부문이 중국의 맹추격을 받고 있고 심지어 역전까지 당하면서 일자리도 빼앗기고 있는 한국이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워싱턴=김홍열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