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잊지못할 그 순간] "13년전 폴란드서 직원 40% 그만둘 위기 면담으로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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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와일리 ING생명 대표이사
통역 도움 받아 전임직원 만나 설득
이직 막고 3년뒤 업계 상위로 키워
진심 담은 소통의 소중함 깨달아
통역 도움 받아 전임직원 만나 설득
이직 막고 3년뒤 업계 상위로 키워
진심 담은 소통의 소중함 깨달아
1997년 5월 폴란드에 도착한 지 불과 2주 후 영업 · 마케팅 총괄 책임자가 신설 동종 기업 CEO로 옮긴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가 우리 회사의 우수 직원 및 재정설계사(FC) 40%가량을 영입해 가려고 한다는 이야기까지 듣게 되었다. 설립한 지 갓 2년이 되었던 폴란드 ING에는 임직원 120여명과 FC 1300명 정도가 근무 중이었다. 신생 회사를 뿌리째 뽑을 만한 태풍이 밀려오던 순간이었다.
나는 새로운 생활에 적응할 겨를도 없이,이직을 막기 위해 FC들을 직접 만나 설득하기로 마음 먹고 폴란드 전역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비록 폴란드 말을 못하는 지구 반대편 호주에서 온 신임 CEO였지만 통역사를 대동한 채 언어의 장벽을 넘어 나의 진심을 전달하고자 그들이 하는 모든 활동에 참여했다. 임직원과 FC들을 한 명 한 명 직접 만났다. 폴란드 ING의 사업 비전과 나아갈 방향을 다양한 표현과 인용을 곁들여 명확하고 일관되게 설명했다.
때마침 진행된 FC들의 '성과보상 여행'에도 합류했다. 어떤 날은 새벽 4시가 되도록 FC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그룹 모임도 주선,각 그룹별 만남을 통해 FC들에게 동료 의식을 고취시키고 회사의 메시지를 서로 공감할 수 있도록 했다.
보다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밀착통역'을 해달라는 내 제안을 받고 통역사는 내 손짓이나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하고 목소리의 강약을 흉내 내는 등 내 감정과 발언의 배경을 알리기 위해 애썼다. 그런 경우 종종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분위기가 부드러워지면서 마음이 좀 더 열리고 편안하게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게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직원들과 FC들을 만나 소통하고자 노력한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대규모 스카우트에 나섰던 그 회사는 소수의 직원과 FC들만 데려가는 데 그쳤다. 나는 신생 폴란드 ING를 부임한 지 3년 만에 임직원 600여명과 6000여명의 컨설턴트가 일하는 괄목할 만한 규모의 보험회사로 키웠다. 매년 10% 이상씩 성장하는 폴란드의 생명보험 · 연금 시장에서 2000년 이후 업계 5위 이내로 진입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특히 1999년에는 기업연금시장에서 10개월 만에 고객 150만명을 유치,업계 2위를 차지하는 실적을 올리기도 했다.
되돌아보면 폴란드에서 CEO로서의 시작은 그 나라의 언어를 구사하지 못해도 역할을 잘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첫 기회였다. 그리고 이 자신감은 이후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나라의 CEO로 계속 발전해온 나의 비즈니스 여정에 밑거름이 되었다. 폴란드에서 배운 커뮤니케이션 방법은 저마다 다른 문화와 가치관,다른 언어를 쓰는 대만과 홍콩에서도 빠르게 융화되고,리더로서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내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지난 1월 한국 CEO에 부임한 후에도 제일 먼저 FC들을 만나 소통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것이 바로 낯선 외국인 사장이 영업 성장을 독려할 수 있는 가장 진실되고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호주 시드니에서 살아왔던 내가 여러 나라의 근무 경험을 통해 습득한 것은 바로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이다. 비록 언어는 통하지 않아도 분명하고 솔직하게 대화하고자 하는 나의 의지를 반복해서 보인다면 진심이 통한다는 것을 폴란드에서 접한 첫 위기에서 배웠다.
기업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 철저한 전략도 중요하지만,진실되고 명확한 밀착 커뮤니케이션이야 말로 기업과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이 된다. 오늘도 나는 이 점을 마음에 새기며 한국에서의 아침을 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