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보선 11일만에 특임장관..집권후반기 그랜드플랜 짤 듯

`왕의 남자' 이재오가 7.28 재보선을 통해 화려하게 컴백한 지 불과 11일 만에 특임장관에 전격 발탁됐다.

정권 2인자, 실세, 친이(친이명박)계 좌장으로도 불리는 이 의원이 최단시간 두번의 도약을 거쳐 명실상부하게 정권의 중심으로 우뚝 선 것이다.

이 의원의 입각은 그의 여권내 위상과 특임장관이 갖는 정치적 비중을 고려할 때 단순한 실세 한 명 입각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특히 집권 후반기를 맞아 개국 공신이 정권의 전면에 나섰다는 점에서 `책임정치' 등 향후의 국정운영 변화를 가늠해 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특임장관 내정자는 전임자나 다른 장관에 비해 훨씬 많은 권한을 갖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직제상 총리 직속이지만 다소 경륜이 부족한 김태호 총리 후보자를 보필하고 이명박 대통령과 수시로 대화하면서 당정청의 막후 통합조정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한마디로 이명박 정부 집권 후반기의 성공적 운영과 차기 정권 재창출을 위한 그랜드 플랜을 짜는 역할을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벌써부터 여권 내부에선 4대강 사업 등 정책 현안은 물론이고 여권 전열 재정비, 당청소통, 개헌 및 권력구조 개편, 선거구제 개편, 보수대연합, 남북관계 등 정치 이슈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수시로 이 내정자에게 `특별 임무'을 부여할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물론 일각에선 이재오 특임장관 카드가 친박(친박근혜)과의 갈등을 피하고 당 화합을 위한 절묘한 선택이라는 해석도 내놓는다.

이 내정자가 여의도에서 모래알 같은 친이의 구심점 역할을 할 경우 친박과의 대립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 내정자를 고리로 당정청 관계는 한층 긴밀해 질 것으로 보인다.

정치인 실세, 정권 2인자가 내각에 들어가 막후 통합조정 역할을 하면서 당정청 모임이 한층 활성화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다.

이 내정자 개인 입장에선 국민권익위원장 시절 주력해 온 부정과 부패를 청산하는 일에도 계속 매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 내정자는 30여년간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5차례에 걸쳐 10여 년간 옥고를 치른 재야 출신 인사로, 이명박 정부 탄생의 1등 공신으로 꼽힌다.

이 대통령과는 지난 1964년 한일회담 반대시위 때 고려대(이대통령)와 중앙대(이재오)에서 각각 시위를 주도하며 만나 첫 인연을 맺었고, 이후 각자 다른 길을 걷다가 15대 국회에 나란히 입성하면서 정치적 동지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이 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을 때 선대위원장을 맡은 데 이어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과 본선 때 이명박 캠프의 좌장을 맡아 선거운동을 진두지휘하면서 최고 실세로 부상했다.

하지만 그의 영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대선 승리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치러진 4.9 총선에서 공천 파동과 정권견제론의 역풍을 받고 낙선하면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

총선패배 후 한 달 보름만인 5월26일 미국 유학길에 올라 지난해 3월28일 귀국할 때까지 꼬박 10개월을 미국에서 보내야 했다.

그러다 지난해 9월29일 국민권익위원장을 맡으면서 본격적인 `변신'을 시도했다.

낮은 자세로 부정과 부패에는 단호하게 맞서고, 서민의 고충은 최대한 해결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정권 창출과정에서 운명처럼 덧씌워진 `강경 투사'의 굴레를 벗었다.

재보선 과정에서도 철저하게 반성하며 낮은 자세로 `나홀로 선거' 운동을 펼쳤고, 그 결과 지역구민들의 신뢰를 회복해 2년3개월 만에 여의도에 복귀하는 데 성공했다.

이 내정자는 야구모자에 티셔츠를 입은 채 자전거로 지역구를 누벼 `자전거 의원'이라는 애칭을 갖고 있고, 고교 교사를 10여 년간 지내 `국어선생님'이라고도 불린다.

(서울연합뉴스) 심인성 기자 sim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