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에서 북쪽으로 40㎞ 올라가면 거대한 만리장성이 구불구불 산등성이를 타고 펼쳐진다. 입구에 크게 쓰인 한자와 한글 글씨는 이곳을 찾는 상당수의 관광객이 한국인임을 보여주는 단서다. 13억 중국인들은 죽은 진시황이 산 중국인을 먹여 살린다고 믿고 있다. 하루에도 수천 대씩 돌아다니는 관광버스가 이를 입증한다.

우리에게 알려진 진시황은 무자비한 정복욕으로 죄 없는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린 폭군이며,분서갱유를 단행한 문화말살자다. 또 신선에 빠지고 불로초에 눈이 팔려 어린 남녀 수천명을 배에 태워 무작정 바다로 보낸 황당무계한 자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이런 반론도 있다. 불분명한 출신 성분을 딛고 척박한 서쪽 진나라를 떨치고 일어나 천하를 통일하고,병합한 6국을 하나의 제국으로 통합하기 위해 도량형과 화폐,문자를 통일했으며,통치 근간이던 봉건제를 군현제로 바꾼 혁신적인 인물이란 것이다.

《사기》'진시황본기'는 진나라가 집정한 40여년의 역정을 사실대로 그려내고 있다. 사마천은 첫머리에서 아버지 장양왕이 조나라에 볼모로 가 있을 때 여불위의 첩을 취해 낳았다고 적고 있고,《사기》'여불위열전'에는 한층 더 나아가 그 첩이 이미 여불위의 아이를 배고 있었는데 장양왕이 그것을 모르고 자기 아들로 생각하고 있다고 보충했다.

13세에 아버지의 뒤를 이은 진시황은 자신의 출생 비밀을 알아채게 되고,그토록 의지했던 여불위가 지나치게 강성해진 데다 모반에 연루되자 그를 가차 없이 제거하고 집정 26년 만인 39세에 천하를 손에 넣게 된다. 두 번의 결정적인 암살 위험을 견뎌낸 그는 자신을 황제라고 이름 짓고,농업을 숭상하고 상업을 억제하며,모든 것은 법에 따라 엄정히 처리했다. 이름에 걸맞게 그는 통일제국을 거미줄처럼 잇는 도로를 동(銅)마차를 타고 누비며 자신의 업적을 금석에 새겨 기념하기도 했다.

6년 후 진시황은 북방을 다스리고 오는 길에 연나라 사람 노생이 바친 귀신이야기 책 《녹도서(錄圖書)》를 얻게 됐다. 거기에는 '진을 망하게 할 자는 호(胡)이다'란 섬뜩한 말이 있었다. 진시황은 즉시 장군 몽염(蒙恬)에게 군사 30만명을 이끌고 북방의 호인(胡人)들을 치도록 하고,20여만명의 죄수를 동원해 만리장성을 쌓게 했다. 그러고는 2년 후 자신의 개혁에 반대하는 제나라 박사 순우월(淳于越)의 전통론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의약,점술,식목 관련 서적을 제외한 모든 책을 없애고 철저히 법으로 다스릴 것을 천명한다. 도로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1만명이 앉을 수 있는 아방궁도 짓는다. 물론 여기에도 70여만명의 죄수가 동원됐다고 사마천은 '진시황본기'에서 적고 있다.

어디 이뿐인가. 영지(靈芝) 및 선약(仙藥)과 신선을 찾게 하고 자신도 짐(朕)이란 말 대신 신선을 의미하는 진인(眞人)으로 부르라고 명했다. 수도 함양의 궁전 270곳을 연결해 휘장을 두르고 악기와 여인들을 가득 채웠다. 자신의 거처를 입에 올리면 사형에 처했다.

그런 그가 나이 50세에 동방 순행에 나섰다가 사구(沙丘)라는 곳에서 객사하고 만다. 죽기 전에 그가 맏아들 부소에게 제위를 계승하라고 남긴 유서는 이미 밀봉된 채로 환관 조고의 손에 있었다. 여름에 썩어가는 그의 시신 곁에는 총애하던 막내 아들 호해(胡亥)와 승상 이사,환관 대여섯명이 있을 뿐 맏아들 부소는 변방에 쫓겨나 있었다. 결국 그의 유서는 부소를 제외한 이들에게 위조돼 부소와 몽염은 자결하라는 거짓 유서로 바뀌었고 이로써 진제국은 호해에게 넘어가게 된다.

21세에 제위에 오른 호해는 갖은 폭정을 일삼다가 반란군의 압박에 못 이겨 자살하고 말았다. 뒤를 이은 자영도 46일 만에 유방에게 투항했다. 결국 진나라를 멸망하게 만든 자는 호인이 아닌 아들 호해였으니 그토록 많은 희생을 무릅쓰고 건설한 만리장성은 오히려 진나라와 북방의 소통을 방해하고 화이(華夷)로 대변되는 충돌과 단절,반목과 질시의 상징이 돼버렸다.

최고경영자의 섣부른 판단착오와 자기 과신은 구성원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심지어 조직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다. 판단은 리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늘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wjkim@ko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