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식 제재와 달라.."행정명령이지만 제재효과는 강해"
'외교적 협조'에 한계 있을 듯..'대화 유도' 포석도

로버트 아인혼 미 대북제재 조정관이 1일 저녁 들고올 '방한 보따리'에 외교가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이 지난달 '2+2'회의(한.미 외교.국방장관회의)를 통해 예고한 대북 금융제제의 밑그림이 그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다는 관측에서다.

현 제재국면의 흐름과 방향을 좌우하는 차원을 넘어 '포스트 천안함'의 한반도 정세 운용과도 직결돼있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미 워싱턴 외교가를 중심으로 미국이 구상중인 '북한식 맞춤형 금융제재'의 얼개가 드러나 있다.

그 핵심은 불법행동에 연루된 북한 기업ㆍ기관ㆍ개인의 리스트를 공개해 제3국 금융기관들이 자율적으로 거래를 중단토록 주의와 자제를 촉구하는 것이다.

법적인 강제수단을 동원하기 보다 '외교적 노력'에 의존하는 시스템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이란과 거래하는 제3국 금융기관과 기업은 아예 미국 금융기관과 거래하지 못하도록 강제수단을 담은 이란식 3단계 제재와는 확실히 다른 안이다.

법적 근거도 의회 입법이 아닌 대통령 재량의 행정명령으로 구속력이 약하다.

이 때문에 힐리러 클린턴 장관이 공언했던 '북한의 불법 금융활동 중단' 조치를 기대했던 외교가 내에서는 예상보다 제재수위와 강도가 톤다운된게 아니냐는 평가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단선적으로만 보기 힘든 복잡한 국제정치적 포석이 깔려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천안함 도발에 따른 '후과'를 보여준다는 오바마 행정부의 징벌적 메시지는 분명하지만 제재의 효과와 미국 내부의 정책우선 순위, 외교적 환경이라는 현실적 변수들을 고려해 제재의 강도와 속도, 완급을 조절하는 측면이 있다는 관측이다.

정부 고위소식통은 "국민들이나 언론에서는 미국의 입장에 진폭이 있는 것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미국의 기본 정책적 입장에 바뀐 것은 없다"며 "그러나 이란식 제재를 북한에 대해 적용하는데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당장 '고립'에 익숙한 북한사회의 특성상 이란식 금융제재가 효과적이지 않은 점이 있다.

에너지 산업이 전세계적으로 연결돼있고 대외 의존도가 큰 이란과는 달리 북한은 국제금융시스템에 의존하는 산업이 없어 제제의 '약발'이 제대로 먹혀들지 않는다는 얘기다.

오히려 북한으로서는 '고립'을 내부결속의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고 3차 핵실험과 같은 도발의 빌미로 악용할 개연성도 있다.

외교 당국자는 "지난해 유엔 결의 1874호가 가동된 이후 더이상 취할 제재의 영역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중국이라는 존재도 제재의 실효성 측면에서 고려해야할 요인이다.

북한의 금융계좌가 집중돼있는 중국 정부가 추가 대북제재에 미온적으로 반응하는 기류 속에서 강제적인 제재수단을 동원하는 것이 현실적 의미가 크지 않을 수 있다.

자칫 천안함 후속대응과 한.미 연합훈련을 둘러싸고 중국과 대치해온 미국으로서는 무리하게 각을 키우는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

미국 내부의 정책적 우선순위에서도 북한보다는 이란이 '발등의 불'이 되고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현시점에서 이란과 함께 북한을 압박했다가 '두개의 전선'이 형성될 경우 뒷감당이 힘든 측면도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제재의 효과와 정치적 요인들을 고려해 이란식과는 차별화된 '북한식 맞춤형 제재'를 준비 중이라는게 정부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무엇보다도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검토 중인 새로운 행정명령은 기존 제재의 그물망에 걸리지 않는 행위들을 제재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대량살상무기(WMD) 확산이나 대테러와 관련한 행정명령 13382호와 유엔 대북결의 1718호 및 1874호에 포함되지 않는 재래색 무기와 사치품ㆍ위폐ㆍ마약 등과 같은 불법행위가 그 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새로운 행정명령은 특정한 불법행위들을 규제하는게 아니라 북한이라는 국가 자체를 특정(Country-specific)하는 '대북 행정명령'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포괄적 이란 제재법'과 같이 특정국가의 개인.기업.기관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해당국가와 국제사회에 주는 충격이 클 수 있다는게 소식통들의 시각이다.

또 비록 행정명령이기는 하지만 그 효과는 미국의 국내법 못지 않게 강하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이 재무부를 통해 해당 정부당국과 금융기관에 협조요청을 할 경우 신용도를 중시하는 국제금융 관행상 이를 거절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2005년 BDA 사태가 대표적인 사례다.

2005년 9월 15일 미국 재무부는 애국법 311조에 따라 마카오 소재 BDA를 '돈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정했으며 그 충격파는 미국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미국 금융기관들은 BDA와 거래를 중단했고, 아울러 미 금융기관과 거래에 불필요한 장애를 우려한 전 세계 대부분의 금융기관이 BDA와 거래를 기피하자 마카오 당국이 나서서 북한 자금을 동결시키는 조치를 취한 것이다.

한 외교소식통은 "새로운 행정명령이 적용될 경우 BDA와 동일한 형식은 아니더라도 BDA와 동일한 효과는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외교가가 주목하는 점은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가 의미있는 방향전환을 꾀하고 있는 흐름이다.

현재는 대북 제재를 추진하고 있지만 워싱턴이 앞으로의 상황변화에 따라 대화국면으로의 '출구전략'을 예비하려는 포석일 개연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제재조치의 법적 근거를 의회 입법이 아닌 대통령 재량의 행정명령으로 정한 것도 '되돌릴 여지'를 남겨두려는 치밀한 포석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이 북한을 막다른 코너로 몰아세우기 보다는 태도변화를 유도하며 일정한 '퇴로'를 열어주는 쪽으로 대응방향을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외교소식통은 "미국의 대북제재의 초점은 '제재 자체'가 아니라 북한에게 '다른 길'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이 일정한 냉각기를 거친 뒤 6자회담 재개 드라이브를 걸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외교가에서는 당분간 천안함 후속대응을 둘러싼 미국의 압박과 북한의 대응 구도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하한기를 지나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등 국내외적 외교환경의 변수들로 인해 6자회담 재개로의 국면전환이 가시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기자 rh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