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난리다. 빚 때문에.가계 지자체 공기업 할 것 없이 빚더미에 눌려 신음하고 있다. 채무지급유예를 선언하는 지자체가 나오는가 하면 계획된 사업을 포기하겠다는 공기업도 등장했다. 초대형 개발 프로젝트도 줄줄이 멈춰서고 있다. 우리 경제가 '빚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크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나날이 부풀어 오르는 가계부채다.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현재 가계부채 총액은 739조원에 이른다. 2007년 말(630조원)에 비해 불과 2년여 사이 109조원이나 급증했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은 감소세가 뚜렷한데 유독 우리만 증가세를 이어가 더욱 걱정이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지난해 말 현재 143%를 기록,일본(110%)은 물론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가 빚어진 미국(126%) 수준을 크게 웃돈다. 그만큼 상환부담이 무겁다.

게다가 부동산 가격은 하락세를 이어가고 금리는 오름세로 돌아섰다. 집값이 떨어진다 해서 빚도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이자는 주말이나 휴일에도 쉬는 법이 없다. 높아진 금리로 꼬박꼬박 늘어난다. 주택거래마저 단절되다시피 해 채무자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가계부채 문제의 폭발성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공기업 역시 빚덩어리다. 지난해 말 현재 23개 공기업의 총부채는 213조원, 부채비율은 153%에 이른다. 특히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경우는 총부채가 109조원에 달하고 하루 이자만도 100억원에 육박한다. 신도시 택지개발사업 등을 줄줄이 중단해야 하는 처지에 빠진 것은 당연한 결과다. SH공사 경기도시공사 등 도시개발을 추진하는 지방공기업들도 부채비율이 최고 500%에 이르는 등 부실화에 대한 우려가 높다.

지자체 또한 예외가 아니다. 전국 지자체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지난해 53.6%에 그쳤다. 혼자 힘으론 버티기 힘들다는 뜻이다. 직원 월급주기를 버거워하는 곳도 드물지 않다. 성남시의 채무지급유예 선언은 그런 어려움을 상징한다. 사정이 낫다는 성남시가 이러하니 제2,제3의 지급유예 선언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국가 부채도 안심할 수 있는 형편은 못 된다. 정부는 지난해 말 현재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33.2% 수준에 그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사실상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 공기업 및 공적금융기관 부채를 포함하면 실질 국가부채가 다른 나라 못지않은 수준으로 껑충 뛰어오른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나라 전체가 빚으로 굴러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도한 부채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는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남유럽 사태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 또한 과도한 부채가 근본 원인이었음은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다.

지금 같은 상태라면 우리도 언제 금융불안이 현실화할지 모른다. 이제는 빚 증가를 억제하는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총부채상환비율(DTI)을 끌어올리는 것은 바람직한 선택이 아니다. 부동산 경기 침체가 큰 부담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빚 확대를 유도하는 방법은 곤란하다. 양도세 등 세금 부담 완화를 통해 거래를 늘리거나,채무상환기간 장기화로 원리금 상환부담을 줄여주는 게 더 낫다.

공기업들이 사업구조조정을 더욱 본격화하면서 재무건전화를 꾀하는 것도 급선무다. 정부와 지자체 또한 국채와 지방채를 남발하는 행위는 지양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에 시달려야 하는 미래세대에게 빚더미까지 안기는 것은 정말 가혹한 일이다. 빚을 다잡아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