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드라마에서 한강을 향해 "아"하고 길게 소리치는 50대 두 주부의 모습을 보았다. 둘은 속이 좀 시원해졌다고 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멍한 가슴을 안고 사는지도 모른다. 늦은 저녁,즐비한 음식점들의 내부를 보며 걸은 적이 있다. 소주 한잔씩 기울이며 다들 상대에게 뭔가를 끊임없이 말하고 있었다. 정치,경제 내용이 다는 아닐 터인데 이 사람들은 뭐가 그리도 할 말이 많나 싶었다. 말하다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마구 헝크는 이도 있고,멍한 눈빛도 있고,큰 제스처에 힘이 잔뜩 들어간 이도 있다. 한강을 대신한 또 하나의 고함들인지도 모른다.

사람을 찾고 나를 말하면 다음 날 사는 게 조금은 나아지나 보다. 나의 지난 일정을 돌아봐도 짐작이 된다. 세상 일에 지치고,사람에게 다치고,가족은 각자 할 일이 많아 대화를 제대로 못한 채 서로가 각자 외로워 한다. 지속되는 외로움은 우울증이 될 터이고,요즘은 연예인이 아니고도 서민들 역시 우울증으로 세상을 떠나는 뉴스가 이어진다. 이시형 신경정신과 박사는 오늘날 '묻지마 살인'이나 이유 없는 방화,우울증 같은 것들은 '세로토닌 결핍증후군'의 영향이 크다고 말한다. 평안과 포용과 몰입력을 주는 뇌호르몬인 세로토닌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이 모든 비극이 벌어지는 것이라 설명한다. 세로토닌이 모자라서 자꾸 우리가 우울해 하고,다투고,남을 해친다는 것이다. 그런데 명상하며 자기소리 듣기,햇볕쬐기,마시기보다는 많이 씹기,지금보다 세배 걷기….이런 것들이 바로 평안과 몰입을 가져다 주는 세로토닌을 분비시킨다니 놀랍다.

그러나 이 방법들이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다. 세상이 소중해야 이 노력도 하게 된다. 세상이 소중해지는 것은 바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이들은 우선 가족일 텐데 다들 서로 너무 바쁘다. 대화는커녕 얼굴 보기도 힘들다. 마음 속엔 있는데 사랑을 표현하는 법도 잘 모른다. 식당에서 대화도 별로 없이 덤덤하게 앉아 식사하는 남녀를 보면 대뜸 '아,부부구나' 라고 여긴다. 하지만 이렇게 당연하게 보는 것에서 좀 벗어날 수 없을까. 할부금이나 집안 행사 말고도 서로의 기분이나 감정에 대한 대화가 부부 간에도 많아지면 좋겠다. 내내 참거나 묻지도 않았다가 부부싸움 때나 말하지 말고 말이다.

아이를 외국에 보낸 기러기 아빠들이 오랜만에 자식의 전화를 받으면 기쁜데 알고 보니 돈 타령뿐이라고 섭섭해한다. 평소 이런저런 대화가 많았다면 멀리 떨어져 있어도 용돈 얘기 말고도 할 말이 많지 않을까. 우선은 가족에게 가장 많이 힘을 주자.말로,포옹으로 응원을 해주자.나아가 내 가족만이 아닌 세상을 돌아보는 여유를 갖자.우리나라 사람들은 동향이든지,같은 학교를 나왔든지,하다못해 한 번이라도 만났는지에 따라 지나치게 친한 척 한다. 그렇지만 그냥 길에서 만나는,생판 남인 사람에게는 여유도 없고 눈길도 차갑다. 미국 뉴욕 맨해튼 한복판은 다르다. 전혀 모르는 남에게 "와 오늘 멋지네요"라고 인사하고,풀 죽은 모습으로 걸어가면 "기운 내"를 외쳐준다.

거창한 봉사활동을 가지 않더라도 길 가다가 환경미화원께 전하는 감사의 한마디 역시 귀하다. 비정규직 환경미화원으로 산동네 쓰레기와 음식물을 치우는 덕원씨가 원하는 건 자신을 '쓰레기 아저씨'라고 부르지만 말아 달라는 것이다. 마치 자신이 쓰레기가 되는 것 같단다. 냄새 나서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한 식당에도 들어가지 못해 집에서 나올 때 큰 병 가득 물을 담아 들고 다닌다.

우리가 얼마만큼의 돈을 벌어야 선진 한국이 될까.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돈을 더 번들 무슨 소용일까. 윌리엄 아더워드가 전하는 아래 네 가지에서 골라보아도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결국 달랑 하나 남는다. '아첨해 보아라.그러면 당신을 믿지 않게 될 것이다. 비난해 보아라.그러면 당신을 좋아하지 않게 될 것이다. 무시해 보아라.그러면 당신을 용서하지 않게 될 것이다. 격려해 보아라.그러면 당신을 잊지 않게 될 것이다. '

이종선 < 이미지디자인컨설팅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