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중 유대인이 대량학살당한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지금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폴란드어로 '오슈비엥침' 박물관이다. 생체실험실 고문실 가스실 처형대 화장터 등과 함께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낡은 신발과 옷가지,희생자들의 머리카락이 담긴 거대한 유리관 등은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나치의 잔학상을 보여주는 기록영화도 상영하고 있다.

음산하고 끔찍한 곳이지만 세계 각국 관광객이 연중 찾아온다. 그 중엔 이스라엘인은 물론 가해자인 독일인도 많다. 섬뜩한 느낌이 들어 제대로 바라보기 어려운 곳도 있으나 유럽 학생들에겐 필수 방문코스로 꼽힌다. 우리나라 여행사 중에도 동유럽 여행 패키지에 포함시킨 곳이 적지 않다.

9 · 11테러 발생지인 뉴욕 '그라운드 제로'에도 박물관이 들어선다. 매년 9월11일 피랍 여객기가 세계무역센터 건물에 처음 충돌했던 시간부터 두 번째 건물이 무너진 시간까지 102분 동안 그림자가 지지 않도록 설계됐다고 한다. 공사가 진행중인 요즘도 하루 수천명씩 이곳을 찾는다. 새 무역센터로 건립되고 있는 '프리덤 타워'와 함께 박물관이 완공되면 연 700여만명이 방문할 것으로 예상된다.

어두운 역사나 참사의 현장을 관광지로 만드는 이유는 비슷한 비극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후대에 알리려는 목적에서다. 이른바 '다크 투어리즘'이다. 우리말로는 '역사 교훈 여행'쯤 될까. 원자폭탄이 떨어진 일본의 히로시마나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도 여기에 속한다. 독일에는 비극적 과거사를 기억하기 위한 박물관,기념관이 100여곳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다크 투어리즘이 테마여행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1948년 수만명의 양민이 희생된 4 · 3사건의 실상을 알려주는 제주4 · 3평화공원,6 · 25 때 북한 · 중공군 포로를 가두기 위해 설치된 거제포로수용소,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를 추모하는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일제의 잔학상을 재현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등을 찾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단체방문 위주였으나 최근에는 자녀와 함께 찾는 가족단위 관람객이 많아지는 추세란다. 비극의 현장은 스토리를 갖춘 관광자원이자 살아 있는 교육의 장이기도 하다. 여름 휴가지 부근에 이런 곳이 있으면 짬을 내서 둘러볼 일이다. 무작정 보고 즐기는 여행으로 지친 몸과 마음의 균형을 잡아줄 게 틀림없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