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리더스 포럼' 행사가 시작된 지난달 16일 제주 롯데호텔.중소기업인들이 1년에 한번씩 모여 주요 사안을 논의하고 향후 비전을 모색하는 자리를 축하하기 위해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이 무대에 섰다. 처음에는 '웬 국악'이냐며 시큰둥해하던 일부 중소기업인의 표정은 곧 바뀌었다. 중소기업인들은 피리 태평소 가야금 대금 아쟁 해금이 타악기,신시사이저와 어우러져 뿜어내는 신명스러운 선율에 감탄을 토해냈다. 마침내 피날레 곡인 '프런티어'가 끝나자 일제히 일어서 '앙코르'를 외쳤다.

중소기업인들이 국악 사랑에 빠졌다. 중소기업인들은 5일 오후 서울 국립국악원에서 '아름다운 선택,국악지음 날개를 펴다'라는 주제로 국립국악원 후원회 '국악지음'의 출범식을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석연 법제처장 등 정부 인사와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전수혜 여성경제인협회장,황철주 벤처협회장,한승호 이노비즈협회장 등 중소기업 단체장,중소기업 대표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국립국악원의 후원단체가 결성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인이 앞장서서 문화단체 후원을 주도하고 대기업 등이 뒤따른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중소기업인들의 국악 사랑은 여느 젊은 아이돌의 팬클럽 못지않다. 후원회 결성 전에 이미 법인회원 35개사,개인회원 167명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과는 별도로 자금이 넉넉지 않은 중소기업 중에서 물품 후원을 하겠다고 나선 업체도 11곳에 이른다. 옹기 전문업체인 '전통예산옹기'는 공연에 써달라며 옹기를 제공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중소기업인들과 국립국악원의 만남은 올해 초 시작됐다. 국립국악원은 내년 설립 60주년을 맞아 저변 확대 차원에서 대기업과 공기업 등을 중심으로 후원회를 물색했다. 하지만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국립국악원은 중소기업으로 눈을 돌렸다. 때마침 중소기업중앙회 내부에서도 경제5단체로서 위상 정립과 중소기업의 문화경영 확대 등에 맞춰 소외된 문화단체를 찾아 후원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중기중앙회와 국립국악원은 지난 5월 국악 발전과 중소기업 문화경영 활성화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이 후원회장을 맡아 후원회 결성에 나섰다.

중기중앙회는 중소기업인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지난 5월 중소기업주간 행사로 '중소기업과 함께하는 음악여행'을 열고 국악 공연을 가졌다. 제주 공연까지 본 중소기업인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후원회에 가입한 정재한 아룡산업 사장은 "국악이 현대음악이나 서양의 클래식 음악에 비해 소외당한 것은 상대적으로 뒤떨어지기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접할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국악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더 많이 보게 되고 그만큼 애정도 쌓이게 됐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인들이 국립국악원 후원에 나서자 이에 고무된 국악인들도 후원회 가입을 신청했다. 인간문화재 정재국 선생,황병기 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안숙선 명창,국악가수 이안씨 등이 후원회 가입 의사를 밝혔다. 또 신한은행이 1억원을 쾌척하기로 하는 등 금융권과 대기업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김용삼 국립국악원 국악진흥과장은 "국립국악원이 예술의전당 옆으로 이사온 지 2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국립국악원을 찾아가려면 택시를 타고 '예술의전당을 가자'고 얘기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300만 중소기업인들이 국악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여주고 있어 국악 저변이 크게 확대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